※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디코드+’는 조선일보 온라인칼럼 ‘최원석의 디코드’의 ‘네이버 프리미엄’용 별도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나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너지저장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ESS) 시장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가속화되면서, 풍력·태양광 발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ESS 시장이 함께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증가 속도가 풍력·태양광 발전의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전자산업전문지인 닛케이 일렉트로닉스가 지난 20일 자에 “풍력·태양광 에너지산업이 초창기에 완만하게 성장한 것과 달리, ESS 시장의 성장은 로켓 발사에 가깝다”고 분석했습니다.

ESS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풍력·태양광이 화석연료 발전과 달리, 항시 비슷한 양의 발전을 유지하거나 전력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때 빠르게 공급량을 늘리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해도 올해 들어 ESS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습니다. 미국·유럽 등을 중심으로 GWh급의 대규모 리튬이온배터리 기반 ESS 시스템을 도입하는 뉴스가 수시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영국 조사회사인 우드 맥킨지 파워&리뉴어블(Wood Mackenzie Power & Renewables)은 올해 미국의 ESS 도입량을 전년의 약 3.3배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드 맥킨지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 시장도 거의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2021년의 전 세계 ESS 도입량은 28GWh로 추정되는데, 2030년이 되면 누계로 1TWh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3년 전인 2018년 11월, 미국 조사회사인 블룸버그 NEF는 2040년에 ESS시장 규모가 62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는데요. 당시 블룸버그 NEF는 전 세계 ESS 도입물량 누계가 1TWh에 달하는 시점을 2040년으로 예측했습니다. 우드 맥킨지의 이번 예측은 3년 전 블룸버그NEF의 예측을 10년이나 앞당긴 셈입니다.

닛케이일렉트로닉스는 ESS 대량 도입이 촉발된 배경을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기업의 탈(脫)탄소화 추진의 가속

(2)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電力)이 미국·유럽에서 (전력 수급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대규모로 남아도는 것

(3) ESS 자체의 비용이 떨어지면서, 재생가능 에너지와 세트로 도입할 때 발전 비용 경쟁력이 생기는 것

등입니다.

(1)은 이미 설명이 불필요할 테고요.

(2)는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양광·풍력 발전의 출력이 억제된 양이 매년 증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전력계통의 수급균형을 모니터링하는 CAISO(California Independent System Operator)는 2021년 3월, 그달의 출력 억제량이 342GWh, 연간으로는 누계 1.5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유럽 상황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합니다. 지난 1월 영국 컨설팅회사인 레인 클라크&피코크(Lane Clark & Peacock)는 작년에 영국에서 잦은 풍력발전 출력 억제가 이뤄져 3.6TWh 이상의 전력량이 버려졌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이를 리튬이온배터리에 충전해 놓을 수 있었다면, 일반 가정 100만 세대 이상의 1년분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사는 만일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2025년에는 출력 억제에 의한 손실이 연간 10억 파운드에 이르게 되고, 반대로 20GWh 분의 ESS를 전력 계통에 도입하면 풍력 발전의 출력 억제를 반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재생가능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리튬이온배터리의 저비용화가 진행돼 (3)의 재생가능 에너지에 배터리를 조합해 사용했을 경우의 발전 비용은 100원/kWh을 밑도는 수준으로 경제성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영국 조사회사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는 화력발전의 발전 비용보다 떨어지는 것은 202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측하지만, (1)의 원인으로 인해 화석연료 발전에 더욱 비난이 가해지고 있는데다 (2)의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이 ‘재생가능 에너지+ESS’의 발전 비용을 더 떨어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는 ESS와 합쳐진 재생가능 에너지가 발전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카본 트래커는 설명했습니다.

물론 ESS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저장하는 시스템의 통칭이기 때문에, ESS의 수단이 반드시 리튬이온배터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가 에너지의 손실률, 저장밀도, 설치단가 등을 종합한 경쟁력에서 리튬이온배터리를 앞설 수단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ESS 수단의 대부분은 리튬이온배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재사용하기까지의 손실률이 리튬이온배터리는 15% 내외인 데 비해, 수소연료전지의 경우 투입한 전력량의 60% 가까이 손실됩니다. 수전해 장치, 저장, 연료전지의 총 3단계 변환을 거치는 과정에서 각각 최신 기술을 써도 투입한 전력량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ESS 수단의 후보군 가운데에서도 수소연료전지는 손실률이 가장 높은 편입니다. 이외에도 ESS 후보기술로 다양한 것들이 연구되고 있지만, ESS 시장의 폭발로 가장 큰 혜택을 입는 것이 리튬이온배터리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태양광·풍력 발전 증가에 따라 리튬이온배터리 기반 ESS 시장은 앞으로 더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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