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고토구의 대형 쇼핑몰 ‘다이버시티 도쿄 플라자’ 5층의 한 키즈카페. 298㎡(90평) 면적의 놀이터에서 3~6세 일본 어린이들이 한국 캐릭터 ‘아기상어’와 ‘핑크퐁’ 인형을 안고 뛰어놀았다. 부모와 아기상어 색칠놀이를 하거나, 핑크퐁 캐릭터가 나오는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아이도 많았다. 현지 8곳의 키즈카페에서 아기상어를 만난 꼬마 고객은 12만8000명을 넘는다. 한국 스타트업 ‘더핑크퐁컴퍼니’는 일본 키즈카페와 편의점, 아쿠아리움, 통신업체 등과 손잡고 지난해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캐릭터 대국인 일본에서 K캐릭터 신드롬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앞세워 일본에 속속 입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뚫지 못한 ‘한국산(産) 무덤’ 일본 시장에서 현지 기업을 인수하거나, 다양한 협업 모델을 통해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잦아들면서 협업으로 성공을 일구는 ‘한일 신(新)융합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IT, 일본은 인력·자본… 스타트업 함께 손잡고 세계로

◇한국 IT와 일본 인력·자본 결합

지난달 28일 도쿄 번화가 롯폰기에 있는 12층짜리 레지던스 롯폰기듀플렉스타워. 한 달 이상 장기 투숙을 하는 레지던스인 이 타워는 170실이 거의 만실이었다. 이 건물은 한국 스타트업 H2O호스피탈리티가 운영하고 있다. 건물주로부터 운영권을 통째로 위탁받아 숙박 임대업을 펼치는 것이다. 일본에서 3만여실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6년 전 일본의 스타트업 하우스케어와 호스포얼라이언스를 인수해 일본에 진출했다. 운영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한국 엔지니어가 만들고 영업·관리·운영은 일본인 직원이 맡는다.

5년 차 스타트업인 올리브유니온은 이르면 다음 달 일본 쓰쿠바대 의대와 ‘디지털 이명(耳鳴) 치료제’의 임상을 시작한다. 이 회사는 서울에서 창업했다가 일본의 장애인 복지 기업인 리탈리코에 “보청기 시장이 더 큰 일본에서 사업하자”는 제안과 110억원의 투자를 받고 도쿄로 본사를 옮겼다. 한국의 기술력에 일본이 자본을 댄 것이다. 디지털 이명 치료제 프로젝트도 일본 대기업인 스미토모상사가 자금을 댄다. 도쿄서 만난 올리브유니온의 송명근 창업자는 “임상이 성공하면 스미토모상사와 합작법인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남언니와 같이 일본 시장 1위에 오른 한국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성형외과를 고객과 연결하는 플랫폼인 강남언니는 2020년 12월 일본에 진출해 2년 만에 현지 병원 1000여 곳과 제휴했다. 일본 경쟁자인 ‘트리뷰’보다 제휴 병원이 400곳이나 많다. 지난해 매출의 70%를 일본에서 올린 입체(3D) 인테리어 스타트업 어반베이스는 일본 1·3위 가구 회사인 니토리, 시마추와 3D 가상 인테리어 시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고객이 한국 스타트업의 가상 인테리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일본과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

아기상어 키즈카페, 日어린이 13만명이 찾았다 - 지난 1월 도쿄 오다이바의 키즈카페 ‘리틀플래닛’에서 마유 시호(3)양이 한국 캐릭터‘아기상어’가 그려진 카드를 들고 놀고 있다. 이 캐릭터를 만든 한국 스타트업 더핑크퐁컴퍼니는 작년 6월부터 핑크퐁의 캐릭터 인형과 3D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현지 키즈카페를 열어 13만명에 가까운 어린이 고객을 맞았다. /더핑크퐁컴퍼니

과거엔 한국 대기업들이 일본을 단순한 시장으로만 접근했다가 실패했다면 한국 스타트업들은 일본과 협업을 통해 기존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예컨대 더핑크퐁컴퍼니는 아기상어를 일본에 파는 것보다, 일본의 많은 캐릭터를 발굴해 글로벌로 함께 진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아기상어의 성공 노하우를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같은 일본 캐릭터에 접목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오키나와에서 현지 렌터카 중소기업 10여 곳과 손잡고 렌터카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제주패스’도 마찬가지다. 제주패스 윤형준 대표는 “제주도에서 검증한 렌터카 플랫폼 모델을 일본 오키나와와 규슈에서 다시 한번 검증한 뒤 아시아와 미국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제논파트너스 임상욱 파트너(아시아총괄)는 “한국 스타트업 사이에 일본과 함께 강력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함께 글로벌로 가자는 ‘재팬 투 글로벌’ 전략이 성공 방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