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본이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실시한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가 해제 수순에 들어갔다. 6일 한국 정부가 징용 문제 해법을 제시한 직후 일본 정부는 “일·한 양국 정부는 수출 관리에 관한 현안과 관련, 쌍방이 2019년 7월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로 하고, 양국 간 협의를 신속하게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협의’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사실상 2019년 7월 일본이 취한 반도체 소재 3종의 한국 수출 규제를 풀겠다는 의미다. 아베 신조 당시 내각은 2018년 말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에게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자, 이듬해 한국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입힐 목적으로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와 폴리이미드, EUV 레지스트 등 3종의 수출을 규제하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정부가 한국 정부가 배상하는 방안의 징용 문제 해법을 제시하자,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 중단으로 화답한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수출 규제 해제를 위해) 일·한 간 수출 관리와 관련한 정책 대화를 조만간 개최하기로 했다”며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간 수출 규제 현안을 일괄 타결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일방적인 수출 규제에 대해 불합리한 조치라고 반발해 일본을 WTO에 제소한 상태인데 제소 진행 절차를 중단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한국을 수출 절차 우대 조치국인 화이트 리스트(백색 국가)에서도 배제했는데 다시 복귀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한국이 WTO 제소 진행을 일시 중지한 상태에서 양국이 협의 후, 합의안을 통해 수출 규제를 없애는 수순이다.
수출 규제 해제는 이르면 올 2분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가급적 빨리 양국 당국자들이 만나 협의할 것”이라며 “시기는 생각하는 것보다 이른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고위 관계자도 “한국 산업부와 정책 대화를 재개해 한국의 수출 관리 실효성을 확실히 확인할 계획”이라며 “최대한 빨리 정책 대화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일·한 양국이 WTO를 통해서가 아닌, 당국 간 정책 대화로 수출 관리 제도를 확인하는 게 맞는다는 게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도 했다. 한일 간 국장급 경제 정책 대화는 2020년 3월 이후에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강감찬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관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정부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기술 개발과 수입국 다변화, 투자 유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 대일 수입 의존도는 대폭 감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노력에도 기업의 불확실성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수출 관리 정책 대화를 통해 공급망 안전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경제 정책 당국이 한목소리를 내는 만큼, 협의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무난히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일 간 신경전이 남아 있다. 일본 측은 수출 규제는 징용 피해자 문제와 무관한 조치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수출 규제는 안전 보장의 관점에서 이뤄진 조치이며, 노동자(징용 피해자를 의미) 문제와는 별개의 논의”라고 말했다. 일본 경산성도 “재검토하는 이유는 한국 측이 WTO 분쟁 절차 중단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에 정책 대화를 재개하자는 것”이라며 “노동자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밝혔다.
이를 의식한 산업부 측도 “WTO 분쟁 해결 절차 철회가 아니라 잠정 중지”라며 “과거에도 동일하게 분쟁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징용 문제와 수출 규제가 별개라는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는데, 지금 단계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의 주장을 (맞는다 틀리다고) 평가하는 건 한일 관계 개선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