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기준금리 인하는 다음 회의인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논의 테이블 위에 있을 수 있다(could be on the table).”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31일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FOMC는 8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월가는 파월 의장의 이런 발언을 9월에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란 ‘피벗(정책 전환)’을 강력하게 시사했다고 해석했다.

파월 의장은 또 인플레이션 둔화와 노동시장 냉각 여부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지만, “경제가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적절한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했다. 기자회견 후 주가가 일제히 상승하며 시장은 환호했다. 1일 기준금리를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시장에서 보는 9월 금리 인하 확률은 100%까지 올라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확률은 60%대였다.

한편 1일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연 5%로 인하하면서, 유럽, 캐나다 등 주요국의 금리 인하 ‘피벗’ 대열에 동참했다. 영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작년 8월까지 14차례 연속 금리를 올렸고, 올해 6월까지 7차례 동결한 후 이번에 금리를 내렸다.

그래픽=양인성

◇트럼프는 대선 전 금리 인하 반대

시장에서 연준의 9월 금리 인하의 변수로 보는 것 중 하나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5일 대선 전 금리 인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고금리로 인한 경제 부담이 줄고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돼, 집권당인 민주당에 유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공개된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한 이유다.

대선 전 연준이 금리 인하를 할 기회는 9월 FOMC밖에 없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서 파월은 “우리는 절대 정치적 집단, 정치인 또는 어떤 정치적 결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아직 치러지지 않은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넘지 않는 선”이라며 트럼프 발언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걸 시사했다.

파월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처음 연준 이사가 됐고, 조 바이든 정부가 파월의 연준 의장 연임을 지지하는 등 두 번이나 민주당 정부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원이다. 트럼프가 대통령 때 연준 의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파월이 정치적 외풍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파월은 공화당 편도 아니고, 민주당 편도 아닌 월스트리트 사람이다.”

◇월가에서 경력 쌓아온 파월의 선택

파월은 변호사로 일하다 31세인 1984년 투자은행 딜런 리드를 시작으로 월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49세에 연준에 몸담기 전까지 뱅커스 트러스트와 세계 3위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의 임원을 지냈고, 세번캐피털 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를 직접 차리기도 했다. 파월은 통화정책보다 금융 규제 부문에서 많은 경력을 쌓았다. 전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이 각각 뉴욕대, MIT, 예일대 경제학 박사인 것과 달리 파월은 경제학 학위가 없지만 현장 경험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초기 파월은 저금리를 선호하는 투자은행가의 입장에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화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에 가까웠고, 코로나 사태 당시 과감한 금리 인하 등 완화 정책을 이끌었다. 월가 등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트럼프의 금리 인하 반대 ‘협박’에도 파월이 9월에 금리 인하를 주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트럼프와 파월의 본격적인 기싸움은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전적은 무승부다. 6월 말과 7월 초 트럼프가 TV 토론에서 압승하고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면서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높아지자 지난달 초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48%까지 뛰었다. 그런데 이 같은 트럼프발 국채 금리 ‘발작’을 잠재운 것은 파월이다. 파월은 지난달 15일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미국이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 경로에 들어섰다”고 했고, 물가가 진정됐다는 파월의 발언으로 국채 금리는 ‘트럼프 발작’ 이전인 연 4.23% 수준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