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업체 루이비통은 16일부터 주요 가방 제품의 가격을 8~26% 인상했다. 이로써 프리미엄 라인인 카퓌신의 MM사이즈는 753만원이었던 것이 922만원으로 22.4% 올랐다. 하룻밤 만에 169만원이 오르면서 1000만원을 육박하게 된 것이다. 샤넬·디올·버버리를 비롯한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연초부터 주요 제품의 가격을 두 자릿수 이상 기습적으로 올리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보복소비 성향이 강해지면서 명품 수요가 늘어나자, 고가(高價)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이 명품 업체들의 제품 가격은 점점 내려가고 있다. 명품을 되파는 리셀러들이 급증하면서 명품의 희소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고 나니 1000만원 육박, 또 기습 인상

루이비통이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린 것은 작년 10월 이후 5개월 만이다. 루이비통은 이미 작년에도 다섯 차례나 가격을 올린 바 있다. 국내에서 3초에 한 번꼴로 보인다는 의미로 과거에 ‘3초백’으로 불렸던 네버풀 MM은 209만원에서 252만원으로 20.6% 뛰었다. 네버풀 MM은 작년 10월에도 189만원에서 209만원으로 올랐다. 5개월 만에 33%가 뛰어오른 셈이다.

최근 글로벌 명품 업체들은 계속해서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롤렉스·샤넬·디올이 갑자기 가격을 10~22%씩 올렸고, 2월엔 프라다도 가격을 최대 11% 올렸다. 업계에선 대표 명품 브랜드인 소위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이 서로 1000만원대를 향해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쓰면서 경쟁적으로 가격 인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업체들이 글로벌 물류비·인건비를 상승 요인으로 꼽고 있지만, 실제 가격 인상 폭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세가 꺾이고 해외여행길이 열리면서 명품 수요가 줄어들어 다시 매출이 감소할 때를 대비해 업체들이 미리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격 인상이 명품 업체 실적 개선에 일등 공신이라는 분석도 있다. 루이비통·디올·셀린느·펜디 등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작년 실적은 매출 642억유로(약 86조원), 순이익 120억유로(약 16조원)를 기록해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실적을 뛰어넘었는데, 작년에만 몇 차례 단행된 가격 인상이 매출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지난달 실적 발표 때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마진을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에서 가격을 인상할 여지가 아직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픈 런’ 피로에 리셀 가격은 뚝 ↓

재판매를 위해 명품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리셀 시장에선 명품 가격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6일 한정판 상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인 ‘크림’에서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 미디엄백 가격은 1139만원. 지난 1월 6일에 1400만원까지 치솟았으나 한 달 만에 18.64% 떨어졌다. 루이비통의 인기 제품인 멀티 포쉐트 악세수아 모노그램 제품도 16일 리셀 플랫폼에선 300만원 초반대에 팔리고 있다. 1월 초 350만원 가량에 팔리던 것이 11~15%까지 내려갔다.

리셀 시장은 그동안 명품 수요를 폭증시킨 장본인으로 꼽혀왔다. 물건을 사서 몇 년 사용하고 되팔아도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웃돈을 붙여 받을 수 있게 되자 리셀러들이 몰려들었고, 이에 새벽부터 매장 앞에 진을 치고 줄을 서는 ‘오픈 런’ 현상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셀러들이 제공하는 물량이 급증하면서 특정 품목에 있어서는 공급 초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리셀업체 대표는 “작년부터 샤넬·루이비통 같은 제품은 리셀 시장에서 정가보다 무조건 비싸게 팔리는 흥행 보증 수표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엔 정가보다 낮게 팔리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면서 “명품에 쏠린 이상 과열이 이젠 오히려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