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3년 만에 내국인의 면세점 구매 한도(5000달러)를 이달에 폐지한다. 하지만 면세 업계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구매 한도만 없어졌지 세금 혜택을 주는 면세 한도(600달러)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고가품인 경우 면세점이 백화점보다 더 비싸 소비자가 굳이 면세점을 찾을 이유가 없다. 면세 업계는 “코로나 이후 면세점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정책이라고 내놨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색 내기용일 뿐”이라고 불만이다.
국내 면세 한도는 600달러(약 74만원)로 중국 5000위안(약 97만원), 일본 20만엔(약 213만원), 미국 800달러(약 98만원)보다 낮다. 면세 한도가 낮고 초과분에 대해 세금이 많이 붙다 보니, 면세 한도를 크게 넘는 가격의 제품은 백화점보다 비싸지게 된다.
9일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에서 판매되는 상품 가격을 살펴보니 샤넬 ‘클래식 스몰 플랩백’은 이달 기준 8340달러(약 1000만원)였다. 여기에 면세 한도인 600달러 초과액에 붙는 관세, 고가품(약 185만2000원 이상)에 매기는 개별소비세가 추가되면, 자진신고 감면 혜택(15만원)을 받더라도 1394만원이 된다. 백화점에선 214만원이 싼 1180만원에 팔린다. 루이비통의 가방 ‘카퓌신 MM’도 면세점에선 7250달러(약 870만원)지만 세금이 붙으면 1198만원이 된다. 백화점에선 922만원이다. 신혼부부들이 혼수품으로 많이 찾는 시계인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33㎜)’도 면세점에선 991만원이지만 백화점에선 755만원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들은 “면세 한도를 최소 2000달러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세청은 “면세 한도를 올리면 부유층만 혜택을 볼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이다. 관광 업계는 제주를 면세 특구로 시범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제주관광협회 관계자는 “제주에서만 시범적으로 면세 한도를 풀어주고 이에 따른 효과를 검토해 본 뒤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