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롯데리아, 노브랜드버거, 맘스터치...주요 상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햄버거집’입니다. 굴지의 대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로선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창업자 입장에선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메이저가 점령한 햄버거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여의도, 역삼동 등 주요 오피스 상권에 자리잡은 수제버거 전문점 바스버거입니다.

바스버거를 운영하는 회사는 테이스터스. 공동창업자 서경원(40) 대표이사는 서강대 경제학과 2001학번입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인 삼정KPMG와 키움자산운용 등에서 근무하다 수제버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바스버거는 2015년 1월 서울 광화문점 1호점을 연 이후 18개 매장으로 컸습니다. 들고 먹는 수제버거, 미국 펍(pub) 느낌의 인테리어로 버맥(버거+맥주) 맛집으로 입소문 났습니다. 코로나가 본격화한 2020년 처음으로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2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사장의 맛’이 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돈 빌려주더니 홍보까지… 수제버거집 대박의 이유

바스버거를 운영하는 테이스터스의 서경원 대표. /이태경 기자

◇신맛 : 잘 나가던 회계사, 미래를 생각하니 막막

서 대표는 삼정KPMG에서 인수·합병(M&A) 재무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키움자산운용으로 이직 후 펀드매니저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월급쟁이로 살다 2013년 12월 사표를 냅니다.

-회계사 자격증도 있겠다, 다녔던 회사도 남들 부러워하는 곳인데, 왜 그만뒀나요?

“직장인들은 자기의 미래가 될 사람들을 보면서 계획을 세우고, 꿈을 갖잖아요. 위에 상무님, 이사님을 보니 임원되는 게 좋겠다고 느끼면서도, 가정을 돌보기 힘들 정도로 일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더라구요. 나중에 내 아이가 커가는 걸 보고 싶다는 ‘총각의 판타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총각의 판타지만으로 퇴사와 창업을?

“M&A 업무를 해보니 ‘창업이란 게 꼭 우주 천재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을 결심한 2013년이 제게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당시 글로벌 경제가 좋았고, 특히 한국이 금융위기를 잘 돌파하면서 반만년 한민족 역사상 가장 잘 나가던 때라고 생각했어요. K콘텐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였구요.”

서 대표는 펀드매니저였던 대학 동기와 창업을 결심합니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니 진입장벽이 높지 않으면서 사업적으로 충분히 콘트롤할 수 있는 걸 찾았다”며 “두 가지 측면에서 결국 F&B(식음료)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스버거는 오피스상권을 중심으로 버맥(버거+맥주)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테이스터스

◇쓴맛 : 숫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 달라

창업을 위해 4명이 손을 잡았습니다. 이들이 모은 자본금은 4억원. 여기에 지인 8명으로부터 총 4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동업자 4명은 2014년 1월 한강대교 인근에 오피스텔을 얻고 1년 동안 합숙을 했습니다.

서 대표의 첫 사업 아이템은 ‘바스티유’란 이름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였습니다. 2014년 4월 서 대표는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실패한 사업이었나요?

“처음에는 너무 잘 됐어요. 오픈 한 달 만에 잘 나가는 맛집 방송 섭외도 들어왔고요. 미국 뉴욕에 우리랑 비슷한 콘셉트의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엄청 핫했어요. 직접 가서 먹어보고 ‘뉴욕 핫플레이스도 별거 없구나’란 생각까지 했죠. 한국에서 매장 딱 한 개만 오픈하고, 2호점부터는 뉴욕 비롯해서 해외에서 하자라는 얘기까지 했죠. 철없는 아이였죠.”

-오픈부터 잘 됐는데 왜 접었나요?

“바스티유 1호점이 너무 잘 돼서 그해 가을에 바로 가로수길(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2호점을 오픈했어요. 광화문에 3호점 오픈 준비까지 했죠.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면서 잘 안 되기 시작했어요.”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비수기라는 건 예상하셨을텐데요. 더군다나 숫자에 밝은 분들인데요.

“피크 때 매출의 20%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봤죠. 그런데 현실은 5%였어요. 사업 모델을 아예 바꾸든지, 계절 아이템을 추가하든지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서 대표는 1년여 만에 바스티유를 접었습니다. 서 대표는 바스티유 최종 철수 전에 버거 브랜드 바스버거를 함께 시작합니다. 2015년 1월 바스티유 3호점으로 계획했던 광화문에 1층은 바스티유, 2층은 바스버거를 시작한 겁니다.

-아이스크림에서 어떻게 버거로 바꿀 생각을 했나요?

“동업자 중 한 명이 미국 뉴욕에서 오래 살았어요. 버거집을 2년 운영하다가 접고 우리팀에 합류한 그 친구가 ‘한국에 괜찮은 버거집이 없다’고 하는 말에 다들 공감했어요. ‘그걸 좀 다듬어서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나온 게 바스버거입니다.”

바스버거는 미국 펍(pub)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직장인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테이스터스

◇짠맛 : 미친듯이 팔리는데 연봉 2000만원

바스티유 3호점으로 계획했다가 결국 바스버거 1호점이 된 광화문 매장은 독립건물 1~2층을 통째로 쓰는 90평 규모였습니다. 서 대표는 “당시 자신감이 너무 컸다”며 “고정비용이라는 개념을 이론으로만 알았을 뿐 우린 허깨비였다”고 말했습니다.

-바스버거 초창기는 어땠나요?

“손님이 꽉 차고, 점심 저녁 장사 모두 잘 됐어요. 입소문이 나면서 월 매출이 1억원이 넘었죠.”

-그런데 왜 허깨비였다는 거죠?

“당시 광화문 매장 월세가 3000만원이었어요. 장사가 잘 되는데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제가 가져간 돈은 연봉 2000만원 정도였어요.”

-뭐가 문제였나요?

“저희가 비용 구조에 많이 미숙했어요. 당시 버거 세트 메뉴 가격이 6000원대였어요. 마진을 최소한으로 갖고 가자는 콘셉트였죠. 그런데 식자재가 버거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 나오는 거예요. 이상적 비중은 30% 정도거든요. 말도 안 되는 식자재비 비중에 어마어마한 임차료까지 냈으니 마이너스 구조였죠.”

바스버거를 운영하는 테이스터스의 서경원 대표가 양 손에 버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이태경 기자

◇단맛 : 지하에서 빛을 보다

서 대표는 매장을 더 냅니다. 이른바 ‘광화문 대형 매장’은 그대로 두고 이번엔 소규모로 갑니다. 2016년 문 연 여의도와 역삼동 매장은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광화문점도 지하로 이전합니다.

-버거집이 지하에 있는 건 지금도 독특합니다.

“식자재는 퀄리티를 위해 그대로 두고, 임차료를 획기적으로 낮춘 겁니다. 오피스 상권에선 맛있고 가격 경쟁력 있으면, 충분히 계단을 내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광화문점에서 재미를 못 봤는데 확장을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사업을 접을까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광화문점 매출만 보면 직장인들에게 강점이 있다는 걸 확인했잖아요. 실패했던 비용 구조를 보완하면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죠. 시간없는 직장인들을 위해 주문을 빨리 소화하도록 주방 동선도 바꿨죠.”

바스버거 광화문점은 월 매출 1억을 기록하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2호점(여의도점)은 광화문점의 절반이 채 안 되는 40평 규모지만 오픈 3개월 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합니다. 이후 바스버거는 2017년에만 상암DMC점, 국회의사당점, 판교테크노밸리점, 선릉점으로 잇따라 확장합니다. 매출액도 2015년 6억 2726만원에서 지난해에는 219억2978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서 대표는 “철없던 시절 뉴욕 진출을 꿈꿨는데, 올해 다시 진지하게 해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 도쿄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스버거는 잘라 먹는 번거로움 없이 양 손에 잡고 한 입 베어물 수 있는 수제버거를 만들었다. /테이스터스

서 대표는 바스버거의 강점 중 하나로 ‘직영’을 꼽습니다. 바스버거는 초창기 지인이 오픈한 가맹점 2개를 제외하면 16개의 점포가 직영입니다. 아르바이트생을 뺀 정직원만 115명.

-가맹점을 해야 큰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롱런(long run)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퀄리티 콘트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맹점은 아무래도 그게 쉽지 않죠. 가맹점 두 곳은 믿을 만한 지인을 통해 테스트 했는데 더 이상 가맹점은 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배달시장이 커진 걸 감안하면, 한국에서 최대한 매장을 내면 50개라고 생각합니다.”

서 대표는 롱런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습니다. 그가 꿈꾸는 바스버거의 미래에 대해 물었습니다.

“오피스 상권에는 선배의 선배 때부터 쭉 가거나 신입이 오면 꼭 데려가는 그런 식당이 있잖아요. 저희는 40~50년이 지난 뒤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 데리고 저희 매장에 와서 ‘여기가 할아버지 신입사원 때부터 많이 좋아했던 곳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되길 꿈꿔요. 그러기 위해 바스버거는 철저하게 직영으로 운영하고, 유행에 치우치지 않는 맛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냉면으로 비유하면 함흥냉면보다는 평양냉면과 같은 담백한 맛을 추구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