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를 이용한 맞춤 안경을 내세운 ‘브리즘(breezm)’. 안경 회사인데, 올해 초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습니다. 카카오벤처스, 서울대기술지주 등 유명 투자사로부터 60억원 가량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브리즘을 운영하는 (주)콥틱이 설립된 게 2017년입니다. 이제 설립된 지 5년 된 ‘새싹 회사’인데다, 3D 프린터라는 새로운 기술에 CES 출품까지...두 대표는 모두 40대입니다.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성우석, 박형진 두 대표에게 이른바 ‘중년(中年) 창업’의 비법을 물었습니다.

70억 날리기 좋은 사업에 뛰었다, 허영만 초록 안경의 비밀 [사장의 맛]

브리즘 서울시청점에서 성우석(오른쪽) 대표와 박형진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박상훈 기자

◇다른 길 걸었던 두 선수의 만남

성우석, 박형진 대표는 2016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전까지 접점은 없습니다. 나이는 다섯살 차이, 출신 대학(성 대표 고려대, 박 대표 연세대)도 다릅니다. 회계사 출신인 성 대표는 IBK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에서 M&A(인수·합병)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박 대표는 P&G코리아, 월트디즈니코리아 등에서 마케팅 일을 하다 2006년 안경 브랜드 알로(ALO)를 창업해 2012년까지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신 거죠?

박형진 : 대학 컨설팅 동아리 후배가 연결해줬어요. 그 후배가 성 대표의 고등학교 선배였거든요. 제가 알로를 경영하면서 힘들었던 걸 곁에서 다 봤어요. 어느 날 전화가 해서 ‘절대 망하면 안 되는 동생이 무모한 일을 벌이려고 하니까 형이 가서 좀 말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첫 만남은 성 대표를 말리려고 했던 건가요?

성우석 : 저는 몰랐어요. 고등학교 선배가 ‘안경 전문가가 있으니까 소개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당시 두 분 상황은 어땠어요?

성우석 : M&A를 담당하면서 자동차 부품회사 같은 공장이 있는 업체 일을 많이 했어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게 좋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네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제조업 새 트렌드가 뭘까 찾다가 3D 프린팅을 미친듯이 공부했죠. 그리고 회사를 차려서 3D 프린터로 맞춤형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팔았어요. 그런데 돈이 안 됐어요. 3D 프린터를 이용한 제품은 부피에 가격을 매기는 구조예요. 스마트폰 케이스를 3만원에 팔면 제작비가 2만원. 안경이 최적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했죠. 맞춤에 대한 니즈도 있고, 부피도 적당하고요.

박형진 : 창업한 알로에서 나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판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안경 쪽으로는 오줌도 안누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어쩌다가 동업하기로 하신 건가요?

박형진 : 성 대표가 첫 만남에서 3D 프린터로 직접 출력한 안경을 쓰고 왔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감이나 디테일이 괜찮았어요. 발전시키면 쓸만한 제품이 나오겠다는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말리러 갔다가 말려들었죠.

-두 분 성격이 비슷한가요 아니면 정반대인가요?

박형진 : 전혀 달라요. 성 대표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입니다. 회계사 출신이니 숫자에선 특히 그렇고요. 저는 극단적인 낙천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 대표에게 더 끌렸던 거 같아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성 대표가 갖고 있어서요. 동업을 하기로 결정하는데 성 대표의 성격도 크게 작용했어요.

◇1년 묵혀 시작한 사업

성우석, 박형진 대표는 첫 만남부터 마음이 맞았지만 본격적인 동업은 1년 후 시작했습니다.

-왜 바로 동업을 하지 않았나요?

박형진 : 사람이라는 게 좋을 때는 다 좋아보이는데, 의견이 안 맞으면 고통스러운 관계가 됩니다.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게 겁이 났어요. 덥석 같이 동업하자고 하는 건, 예전 철부지 시절에 하던 거라고 생각했죠. 서로 조심스럽게 알아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뭘 했나요?

성우석 : 매주 수요일 오후에 만나 스터디를 했어요. 저희 둘에 더해서 국내 최고 안경 장인으로 꼽히는 윤형기 상무까지 의기투합했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진짜 안경이 될 수 있을지 연구를 해보자는 느슨한 스터디 모임이었어요. 스터디 장소는 윤 상무가 몸담고 있는 안경 회사 휴맥스옵틱 사무실이었고요.

-스터디를 얼마나 한 거예요?

박형진 : 1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했으니 50번 정도 했을 겁니다. 한 번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중간에 성 대표와는 독일 3D 프린터 박람회와 일본 안경 박람회에도 다녀왔고요. 제조 공정, 디자인을 논의하고 시장에 어떤 콘셉트로 내놓을지도 계속 고민했죠. 저는 마케팅을 주로 해왔고, 성 대표는 재무에 아주 밝았고요. 거기다가 안경 사출성형의 최고 전문가인 윤형기 상무까지 있으니 시너지가 났죠.

-사업 시작을 결정한 계기가 있었나요?

박형진 : 윤형기 상무는 최고 안경 장인이면서 보수적이예요. 안경의 마감, 품질 같은 기준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거든요. 시제품을 계속 만들고 콘셉트도 논의하는 게 매주 반복됐는데, 스터디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 윤형기 상무가 ‘우리 이 정도 품질이면 갑시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랑 성 대표랑 윤형기 상무가 있는 휴맥스옵틱이 동업을 하게 됐습니다.

브리즘이 새롭게 출시하는 티타늄 라인./콥틱

◇투자, 무작정 받다가 체한다

브리즘은 잇따라 외부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양질로 거론되는 투자회사입니다. 박형진 대표는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 가려서 투자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투자를 가려서 받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박형진 : 사업 초창기부터 성 대표와 저는 신뢰성 있고 우리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들과만 손을 잡자고 했어요. 사실 더 높은 시장 가치를 쳐주고 투자를 하겠다는 곳들도 있었죠. 하지만 저희의 시장 가치를 좀 덜 쳐주더라도 명망있는 곳을 택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형진 : 제가 2000년대 초반에 알로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투자 부분이었어요. 당시에는 벤처캐피탈을 통해 투자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개인 투자자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죠. 사업이라는 게 치고 올라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개인 투자자들과 불화가 생깁니다.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박형진 : 풀스토리를 얘기하려면 소주가 필요합니다(웃음). 사실 투자자들과의 갈등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 등이 생기게 됐고요. 제가 창업한 알로를 결국 눈물을 머금고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브리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성우석 : 안경시장은 소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브랜드를 잘 알지 못합니다. 거의 노브랜드 시장인 셈이예요. 저희는 이 노브랜드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획기적인 경험을 통해 브랜드화한다는 생각입니다. 노브랜드 중저가 안경 시장에서 기술로 혁신, 새로운 대안이 되는 게 저희의 궁극 목표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가려고 합니다.

브리즘 서울시청점에서 성우석(왼쪽) 대표와 박형진 대표가 3D 프린터로 제작한 안경을 든 모습. /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