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화목순대국은 지난 4월 8000원이었던 순대국·내장탕을 9000원으로 올렸다. 양이 조금 더 많은 특 메뉴 가격은 1만원이 됐다.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니는 김모씨는 “특 사이즈 순대국 한 그릇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 정확히 1만4500원이 나간다”고 했다. 더워진 날씨에 냉면 한 그릇 먹기도 부담스럽다. 지난달 서울 중구 평양냉면 전문점 우래옥은 1만4000원이던 냉면 가격을 1만6000원으로 올렸고, 서울 오장동 함흥냉면도 올 초 1000원 인상했다. 냉면에 커피를 곁들이면 점심값이 2만원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물가 급등은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점심 값 급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점심 한 끼 때우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직장인들은 아예 도시락을 싸 출근하거나 구내식당, 편의점, 저가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지경이다.
◇라면에 김밥 한 줄에 1만원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의 외식비 가격 동향에 따르면 김밥·자장면·칼국수 등 직장인의 대표 점심 메뉴 가격은 올 들어 3~8%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16% 급등했다. 작년 5월 5385원이었던 자장면 평균 가격은 올해 1월 5769원, 5월엔 6223원까지 올랐다. 1년 사이 18% 뛰었다. 냉면·칼국수도 1년 새 10%가량 올랐다.
김밥 프랜차이즈 청담동마녀김밥은 지난달부터 3500원이었던 마녀김밥을 3900원, 4300원이었던 참치김밥은 4800원으로 올렸다. 김밥 한 줄에 라면(4300원)을 먹으면 1만원 가까이 나오는 셈이다. 국민 MC 고(故) 송해 단골집으로 유명했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의 2000원 국밥집도 12년 만에 500원 올렸다.
무한 리필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던 떡볶이 프랜차이즈 두끼는 일부 프리미엄 지점을 제외하면 성인 1인당 8900원이었던 가격을 9900원으로 올렸다. 김관훈 두끼 대표는 “식자재비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생 인건비까지 올라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성비를 내세우던 학생식당, 저가 커피 브랜드도 식자재 값 인상에 백기를 들었다. 서울대가 지난 4월 학생식당 메뉴 가격을 1000원씩 올린 데 이어 수도권과 지방 대학들도 500~1000원씩 인상했다. 코로나 이전 4000원대였던 학생식당 밥값이 7000원대로 수직으로 상승하면서 학생들 끼니 걱정도 함께 늘었다. 메가커피·컴포즈커피·빽다방 등 저가 커피 브랜드들도 지난 4월 이후 메뉴 가격을 200~300원 올렸다.
◇사장님도, 손님도 물가 인상에 깊은 한숨
코로나 거리 두기 완화 이후 매출 반등을 기대했던 소상공인들은 물가 인상이라는 복병에 한숨만 쉬고 있다. 원자재 값 인상분만큼 가격을 올렸다가는 손님들이 찾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의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가격 인상을 고민하는 점주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점주는 “작년 말, 모든 메뉴 가격을 1000원씩 올렸는데 그게 무색할 만큼 물가가 오른다. 6개월 만에 다시 가격을 올리면 손님 떨어질까 걱정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사장은 “올 초 2만8000원이던 베이컨 가격이 지난주 3만3000원으로 뛰더니, 오늘은 3만9000원이더라”고 했다. 지난달 삼겹살 1인분을 1만7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올렸다는 한 백반집 사장은 “삼겹살 공급 가격은 더 큰 폭으로 뛰었지만, 직장인을 손님으로 하는 밥집이 가격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수익을 깎아 먹으며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도전 과제를 정해 이를 인증하는 온라인 플랫폼에는 직장인들이 음식·외식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을 도전 과제로 삼는 ‘무지출 챌린지’가 늘고 있다. 직장인들이 모이는 익명 게시판에서는 “외부인 출입 가능한 구내식당 알려 달라” “도시락 싸 다니려 한다”는 글들도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