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나 럭셔리 브랜드 ‘신상’에만 집중해오던 백화점이 ‘중고’에 꽂혔다. 현대백화점은 신촌점 유플렉스관 4층 전체를 중고 상품 전문관인 ‘세컨드 부티크’로 새로 단장해 16일 오픈한다. 백화점이 한 층 전부를 중고 상품 전문관으로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고 시장에 관심을 갖는 건 현대백화점뿐만이 아니다. 롯데·신세계·네이버 등 온·오프라인의 대표 유통 기업들도 중고 시장에 뛰어들어 당근마켓·번개장터 같은 중고 전문 플랫폼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중고 제품 사용을 탄소 발생을 적게 하는 가치 소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고물가가 겹치면서 가성비가 뛰어난 중고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작년 24조원으로 6배 커졌다.
◇전문관 이어 백화점 1층까지 차지
현대백화점은 작년 2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오프라인 매장인 브그즈트랩을 시작으로 중고 매장을 입점시켜 왔다. 이번에 신촌점에 새로 문을 연 중고 상품 전문관은 806㎡(약 244평) 규모로, 다양한 중고 전문 업체들이 들어왔다.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 의류 플랫폼 ‘마켓인유’는 칼하트, 리바이스, 챔피온 등 6000벌 이상의 중고 의류를 판매한다. 중고 명품 거래 업체 ‘미벤트’, 중고 명품 시계 편집숍 ‘서울워치’,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의 보석·향수·식기 같은 빈티지 상품을 판매하는 ‘리그리지’도 매장을 열었다. 의류 상품의 경우 전문 업체를 통해 세탁과 살균을 거쳐 판매한다. 명품 제품은 전문가의 감정을 받은 정품만 선별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의 얼굴이라 불리는 백화점 1층에도 중고 매장을 연다는 계획이다. 이달 중 미아점 1층에 중고 명품 매장을 열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중고 매장의 경우 전체 고객 10명 중 9명이 20~30대였다”며 “중고 관련 팝업 스토어를 운영해본 결과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커 백화점 1층에 명품 대신 중고를 넣기로 했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중고
롯데·신세계 같은 유통업체와 네이버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도 중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중고 플랫폼 거래의 경우 물건을 직접 사들여 쌓아둬야 하는 재고 부담이 없는 데다 거래 금액의 10~20%를 수수료 수익으로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중고 거래가 하나의 재미이자 친환경을 추구하는 가치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네이버는 올해 6월 손자 회사인 크림을 통해 명품 중고 거래 플랫폼 ‘시크’를 출시했다. 지난 2011년 개설돼 현재 60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명품 커뮤니티 시크먼트와 손을 잡았다. 판매된 제품이 가품으로 판정되면 구매 가격의 200~300%를 보상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롯데쇼핑은 사모펀드와 함께 2003년 문을 연 국내 최장수 중고 커뮤니티인 중고나라의 지분 93.9%를 인수했다. 롯데 계열의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은 지난 3월 비대면 중고 거래 서비스를 위해 중고나라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편의점 점포에서 중고 거래 당사자들이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지난 1월 그룹의 벤처 캐피탈사를 통해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신세계의 이커머스 업체인 SSG닷컴은 번개장터를 입점시켜 리셀(되팔기) 상품이나 중고 명품을 판매한다.
유통 업체나 이커머스 업체뿐 아니라 중고 거래를 주업으로 하는 스타트업들도 함께 경쟁 중이다. 중고 시장 활성화를 이끈 당근마켓과 젊은 세대들이 운동화나 패션 용품, 레저 상품 등을 거래하는 번개장터도 대표적인 중고 거래 스타트업이다. 최근에는 트랜비·발란·머스트잇 같은 명품 플랫폼들도 중고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