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이마트24는 요즘 전국 6400여 점포에 50쪽짜리 밀키트 카탈로그 책자를 눈에 잘 띄게 비치해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유통 업계에서 종이 안내 책자는 자취를 감추는 추세인데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 같은 카탈로그북을 부활시킨 것이다. 디지털 결제에 부담을 느끼는 중장년층 세대의 구매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앱을 통해 밀키트를 예약하는 방식이 낯선 중장년 고객들은 카탈로그를 보고 원하는 제품이 있는 페이지의 바코드를 점원에게 보여줘 결제·예약을 한다. 이마트24 관계자는 “40대 이상 손님들도 편리하게 밀키트를 살 방안을 고민한 결과”라며 “책자의 절반 이상을 음식 사진으로 채우고 가격 표시도 진하게 했더니 호응이 좋다”고 했다. 실제로 카탈로그를 도입한 11월 이후 카탈로그 주문 고객이 매월 늘어 지난달 밀키트 매출이 11월 대비 39% 증가했다.
유통 업계가 ‘시니어 프렌들리’ 마케팅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나 모바일 앱, QR 코드를 통한 디지털 결제 대신 아날로그 방식을 도입하거나, 디지털 결제 방식을 단순하고 쉽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유통 업계에선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의미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시니어 전용 키오스크 도입
서울 종로 피카디리 1958 극장에는 고령층 관객을 위한 특별한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CJ CGV가 작년 10월 시범 설치해 4개월째 운영 중이다. 일반 키오스크와 달리 영화표를 구매하는 절차가 간단한 대신 설명은 자세한 게 특징이다. 예컨대 ‘인원 선택’ 단계에선 ‘영화를 관람하실 인원 수를 선택해주세요’ ‘선택하신 후 오른쪽 하단에 선택 완료 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문구로 순서를 안내한다. 최종 선택 버튼 위에도 ‘인원 수를 다 선택하셨으면 이 버튼을 눌러주세요’라는 문구와 손가락 표시가 큼지막하게 떠 있다. 키오스크의 글씨도 일반 키오스크 대비 50% 이상 크다. CGV 관계자는 “시범 운영 단계인 만큼 수시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할 점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키오스크 업체들도 시니어 전용 키오스크 수요 폭증에 대비하고 있다. 업계 1위 오더퀸은 화면을 터치하는 과정 없이 AI(인공지능) 챗봇이 목소리를 인식해 주문을 도와주는 키오스크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일부 무인 로봇 카페에 시니어 키오스크를 설치해 테스트하고, 하반기 본격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다. 키오스크가 얼굴을 인식해 연령대 맞춤형 화면을 제공하는 기술도 적용할 예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디지털 약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정부 정책, 고령 인구 급증세에 맞춰 시니어 키오스크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키오스크 업체 씨아이테크도 작년부터 경기 하남시 미사도서관 한 카페에서 음성 인식 키오스크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결제 도우미 도입하는 곳도
기존 키오스크 이용을 돕는 쪽으로 전략을 세운 곳들도 나오고 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노브랜드 버거는 7일부터 서울시청점, 을지로4가점을 포함해 시니어 세대가 많이 찾는 수도권 매장 20곳에 ‘키오스크 가이드’ 제도를 도입한다.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손님이 직원을 호출하면 점장이 즉시 가서 도와주는 제도다. 신세계푸드는 이를 위해 최근 점장을 대상으로 3주간 교육을 마쳤다. 이 업체 관계자는 “호응이 좋으면 대상 점포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키오스크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롯데리아·엔제리너스 등을 운영하는 롯데GRS는 서울시와 함께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교육용으로 무인 주문 기기를 대여해주거나 점포를 고령층 현장 교육 장소로 제공한다.
편의점 GS25도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강남점 택배 접수 키오스크 화면 옆에 ‘이용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안내문 종이는 A4 크기로 키오스크 전체 화면만 하고, 문구 글씨도 화면 안 글씨보다 크다. GS25 관계자는 “최근 택배 이용이 늘어난 중·장년층의 불편함을 줄여주기 위해 내점객 수가 많은 곳에서 시범 운영을 해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