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7일 오후 서울 성수동 서울 숲 인근 상권이 점심인파로 붐비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성수동 카페거리보다 서울 숲 인근 상권들이 더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지난 16일 서울 뚝섬역 인근 서울숲 카페거리. 한 돈가스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가성비 맛집’으로 소문 난 곳이다. 이곳에서 140m쯤 떨어진 한 우동집 앞에도 손님 10여 명이 줄을 섰다. 직장인 박모(28)씨는 “이곳 식당들은 보통 몇십 분씩 줄을 서야 밥을 먹을 수 있다”면서 “최근 손님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뜨는 상권’ 지형을 바꿨다. 서울 명동과 홍대, 강남역과 가로수길로 대변되던 기존의 ‘대형 상권’을 흔들고, 임차료가 상대적으로 싼 골목 상권들을 새롭게 뜨는 상권으로 부상시켰다. 과거 찬밥 신세였던 뒷골목 상권의 역습인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관계자는 “코로나 기간 임차료가 더 비싼 메인 스트리트부터 유동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전국 상권이 전반적인 쇠락을 함께 겪었고, 이후부턴 뜨는 상권도 재편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키운 ‘파생 상권’

서울숲 카페거리는 코로나 이전 대형 상권으로 꼽히던 성수동보다 최근 더 주목받는다. 흔히들 ‘성수동’ 하면 떠올렸던 문화공간 ‘대림창고’와 카페 ‘어니언’이 있는 성수역에서 지하철 역으로 한 정거장 떨어진 뚝섬역 주변에 2019년부터 하나 둘 가게가 뿌리내리면서 형성돼, ‘파생(派生) 상권’ 중 한 곳으로 불린다. 파생 상권이란 명동·강남역 같은 기존 대형 상권에서 몇 km 떨어진 지역에 생겨난 상권을 일컫는 말이다. 대로(大路)보단 주택가 같은 골목 안쪽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숲 카페거리의 경우엔 코로나 기간 서울숲처럼 탁 트인 공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신생 맛집들이 속속 몰려들면서 커졌다. ‘쏘카’ ‘크래프톤’ ‘무신사’ 같은 스타트업이 사무실을 서울숲 인근 뚝섬과 성수동으로 옮기면서 고정 수요가 늘어난 것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뚝섬역 인근 골목 가게에 줄 선 사람들 지난 17일 서울 뚝섬역 인근 한 커피 전문점 앞에 음료를 사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 코로나 이후 성수역에서 지하철역 한 정거장 떨어진 뚝섬역 주변 서울숲 카페거리가 뜨는 상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파생 상권’의 출현이다. /김지호 기자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서울숲카페거리 인근 가게 수는 작년 4분기 기준 134개. 전년 같은 기간 105개보다 1년 만에 28% 늘었다.

서울 수유역 상권에서 떨어져 나온 우이동의 ‘4·19 카페거리’도 전형적인 파생 상권 중 한 곳이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우이동 ‘4·19 카페거리’에 있는 한 베이커리 카페에는 평일 오후인데도 가게 안부터 테라스까지 손님 수십 명이 북적였다. 이 지역 곳곳엔 본래 낡은 주택이었던 건물을 상업 공간으로 재활용한 카페·식당이 들어섰다. 전체 고객 중 45%는 주말에 몰리지만, 평일 오후에도 인근 동네 주민들과 북한산 등산객들이 적지 않게 오간다.

서울 홍대·서교동에서 2㎞가량 떨어진 곳에 생겨난 서울 망원동 망리단길도 코로나 이후 생겨난 파생 상권이다. 망원 시장부터 한강공원 망원지구에 이르는 사잇길 골목에 밥집과 만화가게 같은 세포 상점들이 하나 둘 들어찼다. 상가 공실률은 작년 1~4분기 연속 ‘제로(0)’에 가깝다. 망원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신촌, 홍대, 연남동 임차료가 오르면서 밀려난 사장들이 코로나 이후 망리단길로 들어왔다”면서 “상가가 부족해 주택을 개조해 상가로 바꾸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로는 ‘텅’, 안쪽은 북적북적

가로수길의 뒷골목 ‘세로수길’은 코로나 기간 가로수길 대로의 유동 인구를 흡수한 지역이다. 뒷골목을 중심으로 카페·와인바·신진 디자이너 숍이 이동하자 가로수길의 메인 스트리트를 오가던 이들이 뒷골목으로 흘러들었다.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세로수길의 한 핸드크림 가게 앞엔 제품을 발라보려는 20~30대 여성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서울숲 카페거리
세로수길
4.19 카페거리

반면 큰 길은 ‘공실(空室)’ ‘임대문의’ 딱지가 붙은 텅 빈 대형 건물이 곳곳에 보였고 상대적으로 찻길 양옆 인도도 썰렁했다. 메인 로드를 점령했던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 중 올해 초 철수한 곳도 적지 않다. 한국 부동산원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상권 재편으로 파생 상권은 부각됐지만, 그만큼 유동 인구를 빼앗긴 기존 상권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