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에서 러크나우로 향하는 테자스 고속철도 열차에서는 승객이 아침 식사를 주문하면, 승무원이 요구르트와 커리, 빨간 롯데 초코파이 한 봉지가 놓인 쟁반을 갖다 준다. 초코파이는 인도에선 요즘 ‘국민 간식’으로 통한다. 인도 고속철도는 현지인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을 아침 식사로 내놓는데, 여기에 한국 기업이 만든 초코파이가 포함됐을 정도가 된 것이다.
한때 중국에서 매출의 절반 이상을 냈던 한국 식품 기업들은 한한령과 불매운동으로 꺾인 동력을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동남아 시장에서도 찾아냈다. UN에 따르면 현재 인도는 14억2862만명이 살고 있는 세계 1위 인구 대국이다. 작년에 중국 인구를 이미 추월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6.3%로 5%대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인도 대륙을 공략하면서 현지 종교와 식성과 지역색을 파악해, 최대한 친숙하고 익숙하게 다가서는 ‘밀착 현지화’ 기법을 활용했다. 동남아 대륙에선 ‘K’ 프리미엄(고급) 이미지를 이용해, MZ세대를 집중 공략했다.
◇인도: 채식 초코파이·피자까지… ’현지 밀착 케어’로 사로잡다
2008년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53%)을 중국에서 낼 정도로 중국 매출 비율이 컸던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는 2017년 사드(THAAD) 배치로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신대륙 인도로 향했다.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현지 기업을 인수해 익숙한 브랜드로 접근하는 것. 2017년 12월엔 인도 서부 지역의 아이스크림 1위 업체 인도 하브모어를 인수했다. 현지 낙농 업체와의 연계를 위해서도 기존 기업을 인수해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코파이에 들어가는 젤라틴을 채식주의자가 많은 인도 특성을 고려해 식물성으로 바꿨다.
인도 사람들에게 K푸드는 이제 제사상에도 올리고, 돌잔치에도 쓰는 일상식(日常食)이자 특별식이다. 한인 마트뿐 아니라 인도 시민 누구나 오가는 철도부터 촌 동네 작은 식료품점까지 K푸드가 일상적으로 소비된다.
가령 로봇이 굽고 AI 기법을 활용해 토핑하는 것으로 유명한 국내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 ‘고피자’는 2019년 인도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쓴 ‘인도 탄두리 치킨 피자’를 대표 메뉴로 내놓았다. 육류가 아예 없는 채소 피자도 10종이나 만들었다. 피자 한 판 크기도 줄였다. 혼자 먹어도 되는 1인용 피자다. 가격은 99루피, 우리 돈 1600원 수준에서 시작한다. 시간에 쫓겨가면서 일하는 IT 기업 직원이 많은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 지역부터 겨냥했다. 고피자 매장은 현재 22개. 올해 상반기 내로 50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오리온 역시 인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초코파이를 만들던 인도 라자스탄 공장에서 올해 4월부터 꼬북칩 생산도 시작했다. 향신료를 즐기는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멕시칸 라임 맛과 사워크림 양파 맛, 탱기토마토 맛 등 꼬북칩 5종을 내놨는데 대형 마트 상단에 놓이는 인기 상품으로 등극했다.
◇동남아: MZ세대 공략, 트렌드 선점했다
지난 2019년 중국 법인 지분 대부분을 중국계 사모 펀드에 넘겼던 CJ푸드빌은 작년 영업이익의 절반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같은 해외에서 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를 한국식 소시지빵과 피자빵, 한국 브랜드 주스와 음료를 판매하는 고급 빵집으로 인식시킨 덕분에 적자를 보던 인도네시아·베트남 법인은 작년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특히 베트남에서 뚜레쥬르는 20~30대 젊은 층을 공략해 시장을 사로잡았다. 호찌민 랜드마크81 같은 고급 쇼핑몰에 매장을 내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했고, 젊은 세대에게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해 충성도를 높였다.
오리온도 베트남 젊은 인구를 공략해 경쟁력을 키운 대표 주자다.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30대 이하 젊은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고, 출산율도 높아 조만간 인구 1억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리온은 이에 한국식 쌀 과자인 ‘안’과 식사용 양산 빵 ‘쎄봉’, 포카칩 이름을 바꾼 ‘오스타’로 젊은 세대를 공략했다. 초코파이 매출도 급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초코파이 매출은 2020년 850억원에서 작년 1200억원이 됐다. 오리온은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해 제3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