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뜁시다. 더 멀리, 더 오래!”
지난 23일(현지 시각) 캐나다 밴쿠버 스탠리 파크에서 100여 명의 여성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캐나다 스포츠 브랜드 회사 룰루레몬이 전 세계 각국에서 선정해서 데려온 홍보대사(앰배서더) 10명도 앞장서서 달렸다. 이들 10명은 모두 직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달리기 선수이자 ‘울트라 러너’다.
룰루레몬은 이날 전 세계에서 선정한 여성 아마추어 달리기 선수 10명에게 내년 3월까지 캐나다 올림픽팀 전문 코치와 스포츠 의학 전문팀을 붙여주고, 각종 스포츠 의류·장비를 맞춤형으로 제작·지원하는 소위 ‘퍼더(Further·더 멀리)’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선수들은 내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6일 동안 계속 뛰는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다.
룰루레몬 본사 최고 브랜드 책임자(Chief Brand Officer) 니키 뉴버거는 “오래달리기에서만큼은 남녀의 최고 기록 차이가 4~8%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면서 “우리가 여성 선수를 지원해주면 이들이 남성의 기록을 깰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여성 스포츠 시장이 코로나 이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 이길 때까지 더 멀리 뛴다”
이날 오전 밴쿠버 룰루레몬 본사에 있는 ‘제품 혁신 실험실(Product Innovation Lab)’.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아마추어 달리기 선수 스테파니 플리핀(33)씨가 산소포화도 체크 장비를 걸치고 트레드밀(러닝 머신) 위에 올라섰다. 그가 5~10분 간격으로 속도를 올려서 뛸 때마다 전문 코칭팀 CSIP는 플리핀의 손가락에서 혈액을 채취했다. 룰루레몬 R&D 부문 부사장 샨탈 머내건(Murnaghan)은 “여성이 운동 중 얼마나 에너지를 쓰는지, 어떤 영양소를 더 소비하면서 뛰는지, 어느 속도로 달려야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 달릴수록 남녀 최고 기록 격차, 4%밖에 안 나
왜 여성을 대상으로만 실험을 할까. 일종의 역(逆)차별은 아닐까. 머내건은 “주요 스포츠 과학 및 의학 저널 중에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은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과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여성 선수들은 오래달리기를 할 때 사용하는 근육(slow-twitch muscle fibers)이 남성보다 20%가량 더 많고, 여성이 같은 조건에서 남성과 마라톤을 뛸 때 사망하지 않을 확률도 1.5배가량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런 가능성을 알아내고 계속 지원해준다면 여성이 스스로의 한계를 결국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커진 여성 스포츠 시장
코로나를 거치면서 여성 스포츠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자 스포츠 브랜드들은 여성들이 운동하는 상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여성 스포츠 의류 시장은 전체 스포츠 시장에서 아직 절반도 되지 않지만, 성장세는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남성 시장이 8% 커질 때 여성 시장은 25%씩 커지고 있다.
스포츠 의류 부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이 보통 사람들이 즐겨 입는 ‘캐주얼 스포츠 의류’ 시장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020~2021년 캐주얼 스포츠 의류 시장은 20.7% 성장했다. 같은 기간 아웃도어 의류 시장은 16.8% 성장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도 이에 앞다퉈 보통 여성을 위한 제품을 연구·출시하고 있다. 나이키는 올해 생리혈이 새지 않는 기능성 바지와 여성용 축구복을 새로 공개했다. 언더아머는 여성 발에만 따로 맞춘 러닝화를 처음으로 출시했고, 아디다스는 올해 여성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속옷 컬렉션을 출시했다. 룰루레몬도 작년부터 여성의 발 모양만을 따로 연구한 러닝화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