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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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배달의 민족’이 결국 베트남에서 짐을 쌉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과 베트남 딜리버리히어로가 합작해 내놓은 법인 ‘배민베트남’은 민트색 헬맷을 쓰고, 눈물 흘리며 손을 흔드는 배민 캐릭터와 “안녕히계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공지를 띄웠습니다. “오는 12월 8일 베트남에서의 운영을 공식 중단한다”는 안내도 함께였지요.
배민 베트남의 베트남 사업 철수는 2019년 베트남 현지 배달 플랫폼 비엣남엠엠을 인수하며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지 4년 만입니다. 매년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이 심화하자 배민 베트남은 서비스 지역을 줄이며 사업 규모를 축소해 왔습니다. 구조조정까지 감행하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베트남 시장에 “안녕”을 고한 거지요.
우리 민족을 부르는 ‘배달민족’과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베트남이야말로 ‘배달 민족’이라 부를 만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음식이나 물건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의 ‘배달’이란 단어는 베트남에 더 들어맞지요. 아침은 물론, 점심·저녁 시간이면 건물 앞은 배달 기사들의 오토바이로 붐빕니다. 음료나 한잔 먹자 하고 들어간 카페가 배달 기사들로 가득 차 있어 돌아 나온 적도 여러 번이지요.
배달 기사의 옷 색깔을 보면 해당 기사가 어떤 배달 플랫폼에 종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랩은 초록색, 쇼피는 주황색, 비(be)는 꿀벌처럼 노란 바탕에 파란 줄, 배민은 민트색입니다.
◇1분에 20번 이상 접수되는 “밀크 티 배달”
베트남 사람들의 배달 사랑은 우리나라를 능가합니다.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치킨’ ‘자장면’ 같은 식사 류인 우리와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음료 한잔도 배달시켜 먹는 게 익숙합니다. 실제로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켜먹는 메뉴 5위를 꼽았더니 음료 류가 2개나 포함돼있었습니다. 배달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그랩푸드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켜 먹는 메뉴는 바로 ‘밀크 티’(2022년 상반기 기준)였습니다. 1분에 20잔 이상의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메뉴이지요. 껌승 혹은 껌땀이라고 불리는 돼지 고기 덮밥, 치킨, 반미와 베트남 커피가 뒤를 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베트남에서의 배달비는 한국에 비해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1~3km 정도 거리는 한국 돈 500~1000원 수준에서 배달비가 해결됩니다. 1km 안팎의 거리를 배달할 때 3000원 가량을 받고, 거리 별로 요금을 할증해 3km 이상이면 5000~6000원을 받는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싸지요.
저 역시 베트남에 갈 때마다 2~3일씩 칩거(?)하며 배달 음식으로 삼시세끼를 다 해결하곤 합니다. 아침에는 간단한 죽을 시켜먹고, 점심에는 국수를, 저녁에는 요리를 시켜먹는 거죠. 중간 중간 목을 축일 음료와 야식으로 먹을 맥주나 간식은 배달 앱에서 편의점을 검색해 배달 시킵니다. 이용자가 많이 없는 시간에는 배달비가 싸지는 데다가 각종 프로모션 쿠폰이 많아 배달이 무료인 경우도 많습니다. 음료 1잔을 시키면 2잔을 더 주는 식의 프로모션이라도 하게 되면 배달료를 내더라도 음료 한잔 당 가격이 뚝 떨어져 이득이지요.
악천후에 배달이 어려운 건 베트남도 똑같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귀여운 안내 메시지가 뜹니다. 악천후 때문에 배달 기사들의 이동이 지연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비 맞으며 음식을 나르는 배송 기사의 그림과 함께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고 화를 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다행히 그 메시지가 뜬 날에도 배달 기사는 제 쌀국수가 불기 전에 도착했습니다.
◇성장하는 시장, 치열한 경쟁
작년 기준 베트남 음식 배달 시장 점유율은 그랩푸드가 45%, 쇼피푸드가 41%로 1·2위 업체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순위로는 3위였던 배민 베트남(12%)이 사업을 접은 것은 이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려울 거란 판단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배민 베트남의 실패는 ‘통합 플랫폼’으로 입지를 굳히지 못한 것이 주 원인으로 꼽힙니다. 음식 배달 시장 1위 업체인 그랩은 승용차·오토바이 등 차량 호출 플랫폼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량 호출과 음식 배달 등을 한 앱에서 이용하면 포인트 적립에서도 유리합니다. 2위 업체인 쇼피푸드 역시 이커머스 플랫폼인 쇼피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노립니다. 저렴하고 할인 행사를 많이 하는 앱으로 알려지며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했죠.
배민 베트남의 경우 시장 진출 초기 손 글씨 마케팅 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앱의 사용 편의성이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도 없어 사업의 ‘본질’을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랩이나 쇼피의 경우 다양한 할인 쿠폰과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의 체감 배달비를 낮추는데 집중한 것과 달리 ‘글씨체 마케팅’ 등에 치중한 배민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앱보다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베트남 소비자들은 우리보다 가격에 민감하고, 앱에 대한 충성도도 낮아 할인 쿠폰이나 프로모션을 제공할 경우 기꺼이 다른 앱을 다운 받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배달비보다야 저렴하지만, 배달비 부담을 느끼는 것은 우리와 비슷해 회사 동료들이 한번에 음식을 시켜 배달비를 나눠 부담하기도 하지요. 배민 베트남처럼 음식 배달 후발 주자였던 고젝의 고푸드나 비가 사업을 시작할 때 할인 쿠폰을 대거 살포한 것도 이런 베트남 소비자의 성향을 노린 것이었을 겁니다.
3위 업체였던 배민 베트남이 철수하지만 여전히 베트남 음식 배달 시장은 매력적입니다. 베트남 현지 스타트업인 로십과 비의 경우 시장 점유율이 7%에 불과하지만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죠. 10만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카페 정보를 갖고 있는 아이포스에 따르면 베트남의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코로나 이후 3배 가량 성장해 작년 29조9000억동(1조6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1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했고, 그 수는 매년 17.5%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체 시장 규모는 인도네시아나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의 절반 혹은 4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성장세를 보면 베트남 음식 배달 시장의 규모도 이들 국가만큼 커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기간 늘었던 배달 앱 사용자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배달비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앱을 지우는 경우도 늘고 있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게 한국에서의 다른 사업일 수도 있고, 또 다시 해외일 수도 있겠지요.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새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배민의 시도 자체는 박수를 쳐 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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