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백형선

이상 기후가 백화점의 판매 전략까지 바꾸고 있다. 갈수록 봄‧가을이 실종되고, 11월 중순까지 여름이 이어지자, 여름을 초여름‧장마‧늦여름 등으로 세분화해서 6계절까지 나눈 뒤, 이에 맞춰 상품 출시 시즌과 세일 기간도 조정하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들은 계절별로 마케팅 일정을 지키는 방식을 고수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관례를 깨고 새로운 판매 전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상 기후로 가을이 짧아지면서 통상 ‘1년 3계절’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백화점 업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길어진 여름을 쪼개 ‘1년 6계절’ 전략을 세워 패션과 과일, 생활용품 판매에 적용하는 것이다. 패션업체와 백화점이 함께 기후위기 TF를 꾸려 신상품을 개발하고, 가격 변동이 심한 제철 과일의 경우엔 직거래 농장을 두 배로 늘리거나 고산지대 농장까지 발굴해 수급 안정화를 꾀하는 식이다. 지난해까지 예측 불가능한 날씨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위기감까지 느끼던 백화점들이 이젠 보다 다양한 상품을 팔기 위한 특별 상품전을 열거나 마케팅 일정을 바꾸는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래픽=백형선

◇수십 년 전통 사계절 세일 일정도 바꿔

기후 위기가 불러온 국내 계절 변화의 뚜렷한 특징은 여름이 갈수록 길어진다는 것이다. 기상청 ‘전국 계절길이 전망’에 따르면, 일평균 기온 등으로 계절을 나눌 때 서울 기준 여름은 127일이었다. 하지만 21세기 후반기에 접어드는 2081년에는 여름이 188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대구·제주를 비롯한 8곳의 지역은 아예 겨울이 0일일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예상과 다른 날씨와 기존 판매 전략이 맞아떨어지지 않자, 지난달 기후위기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패션 협력사 15사와 한국패션산업협회, 바이어 등 20명이 모여 TF를 출범한 것이다. 지난달 첫 회의를 개최했고, 오는 23일에는 본격적으로 시즌별 올해 변동되는 물량 조정 수준을 논의한다. 물류 일정 등 세부 사항도 조율할 예정이다.

TF의 가장 큰 목표는 ‘시즌’의 기준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당초 현대백화점은 봄 1월, 여름 3월, 가을 7월, 겨울 9월에 신상품을 들여오고 시즌이 끝날 무렵엔 정기세일에 돌입하는 일정을 지켜왔다. 하지만 여름이 빠르게 찾아오고 늦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초여름‧장마‧늦여름 등까지 계절 시즌을 쪼개기로 했다. 패션 업체들과 백화점은 이에 맞춰 냉감 신소재를 개발하고 의류에 적용하는 데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여름 시즌 중인 8~9월에는 유동적으로 간절기 특별세일도 진행한다.

패션 업계는 계절이 아닌 그날의 날씨에 즉각 즉각 대응해 새로운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기온이 28도 이하일 때는 카디건이나 얇은 자켓류, 29~35도일 때는 냉감 소재를 적용한 단품류, 35도 이상일 때는 바람막이나 양산 등의 아이템을 앞세우는 식이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작년의 경우엔 11월까지 더위가 이어지다 곧바로 겨울로 접어들었다. 기존 계절 구분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시점별로 아이템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유통채널과 협업해 새 전략을 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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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아닌 날씨에 따른 마케팅

백화점 업계는 길어진 여름 동안 과일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폭염‧폭우와 같은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한 과일 값이 폭등하는 사례가 반복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과일 직거래 농장인 ‘셀렉트팜’을 2배 가까이 늘렸다. 직거래 농장을 다양화하면 포도나 수박 같은 과일 공급이 줄더라도 당도, 색, 모양 등이 우수한 제철 과일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도 과일 산지를 다양화해 여름 과일 작황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여름이 길어지면서 강원도 철원에서도 고온성 작물인 ‘멜론’을 재배할 수 있게 되자, 롯데백화점은 철원산 ‘러시 멜론’을 선보였다.

침구류나 생활 용품 마케팅 또한 날씨에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꾸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계절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기온별 행사 상품을 정한다. 신세계백화점은 “계절 의류, 구스 침구 등 날씨에 따라 매출 등락 폭이 큰 상품 행사 기간을 날씨 예보에 맞춰 유동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번 겨울 기습 한파를 대비해 구스 침구 판매 행사를 일주일 앞당겼다.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경우엔 구매액의 10%를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상품권 행사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