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유통업계가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한 대법원 판결로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의 수익이 줄어들게 됐다. 작년 12월 통상임금 판결의 영향으로 발생한 추가 부담금이 4분기 실적에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영업이익이 대폭 주저앉은 것이다. 롯데쇼핑·이마트·㈜신세계·현대백화점 4사만 합쳐도 추가 비용 부담이 2500억원 이상이다.

통상임금은 다른 기업에도 적용되지만, 유통업은 업계 특성상 상대적으로 직원 수가 많은 데다가 인건비 비중이 높아 실적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설명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은 휴일 근무와 야간 근무가 잦기 때문에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이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통상임금 관련 비용이 일회성이긴 하지만, 내수 부진과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확대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대형 폭탄을 맞은 셈”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유통업계 줄줄이 통상임금 타격

이마트는 지난해 연간 연결 기준 매출 29조209억원, 영업이익이 471억원으로 집계됐다고 11일 공시했다. 이마트 측은 “영업이익에 통상임금 판결로 실제 현금 유출은 없는 회계상 비용 1529억원이 반영됐다”며 “작년 4분기 퇴직충당부채 소급분을 일시 반영했고, 올해는 통상임금 판결로 인한 영향이 미미해 실적이 더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늘어날 퇴직금을 추정해 작년 말 기준으로 부채로 잡았다는 설명이다. 통상임금 관련 비용을 제외하면 이마트의 지난해 ‘실질 영업이익’은 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469억원 증가했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23일 “명절이나 정기 상여금에 ‘지급일 기준 재직자에게만 준다’ 같은 조건이 붙어도 모두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존에는 이런 조건 없이 지급되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데 쓰이고,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이 된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을 반영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대폭 줄었다. 롯데쇼핑은 작년 영업이익은 4731억원으로 전년 대비 6.9% 감소했다. 롯데쇼핑은 법리 변경으로 인한 추가 부담금을 532억원으로 봤으며, 이 금액을 제외하면 작년 영업이익은 5263억원으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고 밝혔다. ㈜신세계도 작년 영업이익이 4795억원으로 전년 대비 25.1% 감소했지만 “통상임금 추정 부담금 등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면 전년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도 작년 영업이익이 2842억원으로 전년 대비 6.4% 감소했다고 밝혔다.

◇“인건비 비중 커 비용도 더 증가”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매장과 물류센터 등에서 일하는 직원이 많고, 인건비 비중이 커서 통상임금 확대에 대한 수익성 하락이 다른 업종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2023년 말 국내 대기업 고용 인원 순위를 보면 이마트는 2만2744명으로 전체 7위, 롯데쇼핑은 1만9676명으로 9위를 차지한다. 마트, 백화점 등은 영업시간이 길고 휴일 영업하는 곳이 많아 초과근로 수당과 휴일 수당 부담도 크다.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공간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 등으로 영업 실적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는 백화점 본점 리뉴얼을 시작했고, 마트는 그로서리 부문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마트는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가 올해 두 곳 신규 출점한다. 신세계백화점도 본점 헤리티지 건물 신규 오픈과 각 점포 리뉴얼을 추진한다.

☞통상임금

근로의 대가로 월급이나 시급(時給) 등 형태로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급여. 퇴직금과 각종 근무 수당을 정하는 기준이 되며 휴일 근로는 50%를 더해 수당을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