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소문 듣고 왔어요 2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수퍼마켓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명동의 'K푸드' 수퍼마켓은 일반적인 수퍼마켓과 달리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과자·아몬드·조미김 등을 전면에 진열해서 팔고 있다. /고운호 기자

#1. “저 왕꿈틀이 젤리도 사자! 저 초코 과자도.” 지난 2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수퍼마켓에서 외국인 여성 두 명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카자흐스탄에서 왔다는 크리스티나(21)는 “요즘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산 과자는 선물로 인기가 최고”라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여행 가방 하나는 한국 과자로만 채워갈 생각”이라고 했다.

#2. 다이소 명동역점과 올리브영 명동타운점 사이 골목. 340m가량 되는 골목엔 한국 과자를 주로 파는 수퍼마켓 4곳, 한국산 조미 아몬드 전문점 2곳, 떡볶이 뷔페와 김밥집 같은 ‘K분식점’으로 꽉 찼다. 몇 년 전만 해도 명동 골목을 메우던 옷 가게와 화장품 가게가 빠지고 골목 전체가 ‘K푸드 거리’로 변한 것이다.

‘K푸드’ 열풍이 명동 상권을 바꾸고 있다. 한때 명동 상권을 가장 많이 차지하던 의류 전문점과 카페, 디저트 전문점 등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과자를 주로 판매하는 수퍼마켓과 한식 음식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 옷이나 화장품을 잔뜩 사가던 단체 외국인 관광객은 줄어드는 반면, 개별 관광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젊은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각종 한국산 과자와 간식거리가 더 많이 팔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래픽=이진영

◇달라진 명동, 옷집·카페 줄고 K푸드 마트·음식점 늘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명동과 남대문시장 일대를 포함하는 명동 관광특구 내에서 지난 2023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1년 동안 한식 음식점은 642곳에서 680곳으로 38곳(6%) 늘었다. K푸드만 주로 판매하는 수퍼마켓도 같은 기간 말 152곳에서 175곳으로 23곳(15%) 늘어났다. 반면 한때 명동 상권을 대표했던 화장품 전문 판매점은 418곳에서 402곳으로 16곳 줄었다. 옷 가게도 3013곳에서 2935곳으로 78곳이 줄었고, 카페는 340개에서 343개로 3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명동 상권 자체가 ‘K푸드 특구’처럼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동의 각종 K푸드 수퍼마켓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명소로 입소문 났다. 간판에 ‘한국’ ‘코리아’ ‘케이(K)’ 등을 붙인 이들 수퍼마켓은 일반적인 수퍼마켓과는 다르다. 채소나 계란 같은 신선식품은 거의 없고, 한국산 과자와 조미김과 아몬드 같은 각종 간식거리가 대부분이다. 열쇠고리, 자석 같은 각종 K팝 아이돌 굿즈를 같이 팔기도 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과 면세 쇼핑이 목적이었던 중국 단체 관광객은 줄어들고, 혼자 또는 친구나 가족끼리 찾아와 개별 여행을 즐기는 MZ세대 외국인 관광객은 늘어나면서 생겨난 변화”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관광객 중 개별 여행을 하는 비율은 85%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9.4%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단체 여행객은 같은 기간 6.7%포인트 줄었다.

관광객들의 출신 국가도 중국, 일본 중심에서 동남아시아와 중동 국가로 다양해졌다. 소셜미디어엔 이들이 “‘찐 한국템(Authentic Korean thing)’ 찾아 명동 왔다” “한국 신상품 쇼핑 나선다”는 식의 후기가 쏟아진다. 한 외국인 유튜버는 “아직 외국에 수입되지 않은 한국 제품이나 신상품을 찾아 수퍼마켓에 간다”고 했다. 가령 라면을 사도, 자국에서도 살 수 있는 오리지널 불닭볶음면보단 로제, 치즈, 야끼소바맛 불닭볶음면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올영·다이소도 “K푸드 강화”

국내 식품 대기업들은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K푸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명동 곳곳의 편의점에 취식용 테이블을 불닭볶음면, 신라면, 진라면 컵라면 모양으로 만들어 갖다 놓는 식이다. 농심은 작년 10월 명동의 한 수퍼마켓 안에 아예 K라면 테마존을 꾸몄다. 이곳 매장 2층에서 신라면, 너구리 같은 라면을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농심이 서울 명동에 연 라면 특화 매장 ‘너구리의 라면가게’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구입한 라면을 조리하고 있다. 이곳 매장에선 구입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농심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된 올리브영과 다이소도 명동 매장만큼은 특별히 식품 코너를 확대해서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매출이 90% 이상인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은 매대 하나를 자사 PB 식품인 ‘딜라이트 프로젝트’ 베이글칩, 부각, 약과 등으로 채웠다. 다이소 명동역점도 12개 층 중 1개 층은 아예 과자 등을 파는 식품 매장으로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