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고온과 고수온, 폭우 등이 잦아지면서 ‘금(金)사과’나 ‘금추(금+배추)’, ‘금징어(금+오징어)’ 등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연중 공급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 식품·유통 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보관 기간을 늘리거나 재배 방식을 바꾸는 기술 전쟁에 속속 나서고 있다. 단순히 좋은 상품을 찾기만 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 연구·개발에 뛰어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상 기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폭염, 가뭄, 홍수는 연례행사가 됐다”면서 “업계에선 이제 이상 기온을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보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품귀 현상’ 줄이려…9개월 보관 양파, 5개월 저장 사과 푼다
롯데마트는 ‘갓 따온 그대로 사과’와 ‘갓 수확한 그대로 단단한 양파’를 19일부터 판매한다고 16일 밝혔다. ‘갓 따온’이란 말이 붙었지만 사실 이 사과는 작년 10월, 양파는 작년 6월에 수확한 상품이다. 두 상품 모두 롯데마트가 CA(기체 제어) 저장고에 보관한 것이다. 수확한 직후에 바로 판매하지 않고 곧장 특수 저장고에 저장됐다.
CA 기술이 적용된 특수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와 질소 비율 같은 기체 조성을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장된 농산물의 노화를 억제하고 미생물과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농산물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보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오랜 기간 갓 수확한 것 같은 신선함이 유지된다. 최근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예전엔 보통 3~4월이면 저장해 둔 농산물의 물량이 줄고 신선도는 떨어져, 농산물 가격이 오르곤 했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수확한 사과가 이상 고온 때문에 전반적인 품질이 떨어지면서 사과 품귀 현상도 빚어질 수 있었다. 이에 롯데마트는 보통 4월 중순 무렵 풀었던 CA 저장 사과를 올해는 한 달 정도 앞당겨 19일부터 출하하기로 했다. 이미 사과와 양파 수확이 끝난 시기지만, CA 기술로 저장한 부사 사과 500t과 양파 200t을 ‘갓 따온’이란 이름으로 팔면서 물가 상승을 막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마트 측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사과와 양파 외에도 수박, 시금치도 CA 기술로 저장하고 있다. 충북 증평에 있는 신선품질혁신센터에 총 1000여 t의 농산물 저장이 가능한 CA 저장고를 운영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앞으로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져도 CA 저장 농산물을 활용하면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땅에서 키우는 김
최근 식품 업계는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는 김을 육지에서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고 해양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이전처럼 고품질의 김을 양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김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자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을 땅에서 양식하면 바다에서 양식할 때보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태풍, 영양염 고갈 같은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 온도와 환경을 제어하기도 편하고, 이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유지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CJ제일제당은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함께 김 육상 양식을 대규모로 산업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 전라남도·해남군에 이어 이번 달에는 인천시·인천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2018년 업계 최초로 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 2021년에는 수조에서 김을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2022년엔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에 적합한 전용 품종을 확보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또한 제주도에서 어류 등을 양식하던 육상 양식장 개조에도 나섰다. 이를 통해 김 육상 양식 시설을 계속 확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동원F&B도 작년 10월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와 제주도 용암 해수를 활용한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제주도 용암 해수는 바닷물이 현무암 등 화산 암반층을 통해 오랜 기간 여과된 ‘염(鹽)지하수’다. 마그네슘, 칼슘, 바나듐 등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연중 16도 내외로 수온이 안정적이다. 동원F&B는 용암 해수를 활용하면 김의 육상 양식이 쉬워질 것으로 보고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