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맛에 가볍게 먹는다는 돼지고기는 이제 수입 소고기만큼 비싸졌어요. 김밥은 한 줄에 2000원이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5000원씩 하네요.”

“집에서 칼국수 해먹으려고 애호박을 샀는데, 3000원이나 합니다. 앞으로는 호박값이 쌀 때 많이 사다가 냉동해 놓고 아껴 먹어야겠어요.”

“야채 값이 너무 비싸서 이젠 약간 시든 부분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해 먹어요. 물건 값이 이렇게 오르는데 늘 쓰는 건 미리 사재기라도 해야 할까요?”

좀처럼 소비를 줄이긴 힘든 생활 물가가 오르면서 안방 경제를 맡고 있는 주부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대출 이자와 세금은 늘어나고 주식 투자는 마이너스인 상태여서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장현호 그로스파인더 운영자는 “금리와 주거비 상승, 물가 급등, 건강보험료·재산세 증가 등이 겹쳐지는 올해, 일반 가정의 가처분소득 감소 악몽이 본격화될 수 있다”면서 “돈 나올 구멍은 계속 줄어들고, 써야 할 돈은 늘어나는 것이 바로 2022년 많은 가계가 마주하는 딜레마일 것”이라고 말했다.

◇밥상 물가 상승률, 10년 만에 최고

교통이나 식료품 같은 생활 물가는 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줄이긴 어려워서 서민들이 물가 상승세를 피부로 느끼기 쉽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5%로 2011년(4.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밥상 물가’라고 불리는 식료품·비주류 음료(5.9%)와 교통(6.3%) 물가가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가격, 차량 연료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지는 적자(赤字) 가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현호 씨는 “빚을 줄여도 이자율이 오르면 이자 비용은 그대로이고 똑같이 생활해도 올라버린 물가 탓에 저축의 속도가 느려져서 마이너스 가계부를 보며 한숨만 쉬게 될 수 있다”면서 “빚을 줄이고, 몇 년을 내다보는 재무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입자의 경우엔 주거 비용 상승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보현 NH투자증권 WM사업부 연구위원은 “지난 2020년 7월 말 도입된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만료가 올해 하반기부터 돌아오는데, 집주인들은 주변 시세대로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주택자인 집주인들은 세금 부담이 큰 만큼, 월세를 받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50대 집주인 K씨는 “수도권 소형 아파트의 세입자가 6년째 비슷한 전세금으로 살고 있는데, 나도 세금과 건보료 부담이 커서 더 이상은 힘들다”면서 “이번 설날이 지나자마자 바로 세입자에게 주변 시세와 맞춰 올리겠다고 통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日 국민간장, 14년 만에 가격 인상

물가 상승 때문에 신음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요즘 일본 언론에는 ‘나쁜 물가상승(悪い物価上昇)’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원재료 상승과 엔저 때문에 물건 값이 급격하게 올라, 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동시에 무거워지는 것을 뜻한다. 임금이 올라서 소비가 늘고, 그래서 물가가 오르는 식의 선순환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4일 “유가 상승, 물류 비용 상승, 엔저 등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이 수개월 후에는 최종 제품이나 서비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봄 이후에도 생필품 가격 상승이 계속되면서 ‘나쁜 물가 상승’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오랜 기간 같은 가격을 유지해 왔던 일본 기업들은 소비가 줄 수 있다는 우려에도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일본에서 ‘국민간장’으로 통하는 ‘키코만’은 “회사 차원에서 노력했지만 (비용 부담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면서 14년 만에 가격을 4~6% 올렸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저가 의류를 판매하는 ‘유니클로’도 지난 13일 열린 결산회견에서 경영진이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금이 오르고 있다는 미국 가계도 살림이 힘들어졌다고 느끼긴 마찬가지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생활비를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전혀 어렵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이 작년 5월 46.7%에서 작년 12월엔 39.9%로 줄었다. 반면 어렵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같은 기간 45.9%에서 49.9%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