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입니다. 든든한 국민연금이 21년도에 91조원의 사상 최대 기금 운용 수익을 달성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국민연금 공단에 전화를 걸면 이런 안내 멘트가 흘러 나온다. 지난 한 해 노후 국민 자금을 잘 굴려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으니,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는 간다. 국민연금이 1년 동안 벌어들인 91조원은 3년치 연금 지금액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또 올해 우리나라 국방 예산(54조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자산별 운용 성과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해외주식 부문에서 29.5%의 수익률을 거둬 가장 성과가 좋았고, 그 다음은 대체투자(23.8%), 해외채권(7.1%), 국내주식(6.7%) 순이었다. 국내채권 부문에서만 살짝 마이너스였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부각되고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 연금 개정이 포함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역대 최대 수익 소식은 반가운 뉴스다.

국민연금은 작년 말 기준으로 948조7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할 정도로 덩치가 큰데, 여전히 지출보다는 수입이 많은 구조여서 2041년엔 1778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그 즈음 한국 국민연금은 전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950조원에 육박하는 큰 돈을 굴리는 공룡 국민연금이 10%대 수익률을 낸 것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자금 규모가 클수록 시장에서 돈을 벌기가 쉽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총알이 많을 수록 투자 손실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위험 관리에 더 치중할 수 밖에 없다. 큰손들은 그래서 자산을 골고루 배분하는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연금이 10%대 수익을 냈으니 대단하다는 것이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2021년은 미국 S&P 500 지수가 29% 상승하고 리츠(NAREIT 기준)가 41% 상승하는 등 최근 3년간의 자산시장 호황이 피날레를 기록한 해였다”면서 “전체 자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채권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자산배분을 하는 국민연금이 10% 내외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우리의 노후와 직결되는 중요한 화두다. 기금 운용 원칙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기본은 수익성일 것이다. 2055년이면 적립금이 바닥난다는 보고서에 불안에 떠는 젊은층이 많은데, 기금 수익률이 좋아져야만 미래 세대의 부담도 줄어든다.

EAR리서치 대표인 홍춘욱 박사는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기금 고갈 시점을 5년 늦출 수 있다”면서 “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수익률에 달려 있는 만큼, 전문가들이 책임감을 갖고 기금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입김이 없어야만 기금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외압이 작용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내공 있는 주식 투자자들은 오늘 대박이 났다고 해서 바로 술을 마시며 파티를 하진 않는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년엔 시장 상황이 자산 운용에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올해는 양적 긴축, 글로벌 인플레에 전쟁 악재까지 겹쳐서 녹록지 않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작년엔 10% 넘는 대단한 수익률을 올렸지만 올해는 5% 정도의 수익률만 올려도 기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춘욱 박사는 “지난 2018년과 같은 금리 인상기가 올해 다시 찾아오는데 당시에도 기금 운용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면서 “올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마이너스만 나지 않아도 선방”이라고 말했다.

증권 전문가들의 예측은 어둡지만, 왕개미연구소는 올해도 국민연금이 작년처럼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 애써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