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우리나라에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을 맞는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1988년)이나 개인연금(1994년, 2001년)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적립금 성장 속도는 가장 빠르다. 최근 5년간 퇴직연금 적립금은 매년 15%씩 증가해 국민연금(연평균 10.1%)이나 개인연금(2.2%) 성장세를 앞질렀다.
하지만 정작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는 퇴직자들은 10.4%로 그다지 많지 않다. 연금으로 수령해야 절세 효과도 크고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수 있지만, 대부분 일시금으로 받기 때문이다. ‘므두셀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가 조선일보 경제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은퇴스쿨’에 출연해 그 이유를 분석했다.
◇퇴직금 연금화 막는 3가지 이유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 6~8월 도시 거주 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크게 3가지 요인이 퇴직연금 적립과 연금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퇴직연금 가입 여부다. 설문 응답자들은 은퇴 시점에 평균 1억2323만원의 퇴직연금 자산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퇴직연금 가입자는 평균보다 많은 1억4016만원, 퇴직연금 미가입자는 평균의 75% 수준인 9350만원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이 높기 때문에 애초부터 높은 소득이 예상 퇴직연금 자산 규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에 소득 구간별로 나눠 살펴봤더니, 1분위(하위 20%)에 속한 응답자 중 49.3%가 퇴직연금 미가입자로 나타났다. 반면 4~5분위(상위 40%)에서는 응답자의 77.2%가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었다.
여기에 퇴직금 적립금 규모도 연금 수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지난해 연금 형태로 수령한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억3976만원이지만, 일시금으로 인출한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645만원에 불과했다. 김동엽 상무는 “퇴직금이 많아야 나눠 받았을 때 절세 효과도 보고, 노후 소득으로 가치도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일시금으로 받겠다는 선택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실제 소득 1분위에 속한 응답자의 52%는 퇴직급여를 일시에 인출하겠다고 답한 반면, 5분위(상위 20%) 응답자는 62%가 연금 형태로 받겠다고 답했다.
잦은 이직과 중간 정산, 중도 인출 등도 퇴직금 누수의 대표 원인으로 꼽혔다. 이번 설문에서 이직 경험자의 43.8%는 퇴직급여를 모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급여를 전부 연금 계좌에 이체했다고 답한 사람은 12.1%에 불과했다. 또 이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급여를 전부 써 버렸다고 답한 이들의 예상 퇴직급여 자산은 9208만원으로, 전액을 연금 계좌에 이체했다는 응답자의 2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한편 이번 설문에 응답한 50대 직장인의 35.3%는 ‘퇴직급여를 중간 정산 또는 중도 인출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유가 다양했다. 내 집 마련(29.9%)이나 전월세 자금(14.3%), 의료비 등이 목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임금 피크제 실시(11%)나 임원 승진·회사 합병 분할(10.5%)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퇴직금을 중간에 받은 경우도 44.2%나 됐다. 퇴직금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퇴직급여 누수를 막기 위해 지난 2022년, 55세 이전에 퇴직하는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IRP(개인형 퇴직연금)에 의무 이체하도록 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IRP에 이체하자마자 해지해도 별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퇴직금 누수 막으려면
김 상무는 “제도적 개선과 개인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퇴직연금 도입 의무를 전 사업장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신규 사업장에 의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미도입 기업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사실상 회사 재량으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다. 퇴직연금 가입 여부가 연금 수령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김 상무는 “이직과 중간 정산으로 받은 퇴직급여를 연금 계좌에 이체하고 연금으로 수령하는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는 퇴직급여를 연금 형태로 받으면 퇴직소득세율의 30%(11년 차부터는 40%)로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이보다 혜택을 늘려 연금 계좌 활용을 독려하자는 뜻이다.
한편 개인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55세 이전 퇴직자는 퇴직급여를 IRP에 이체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지만 이체하자마자 해지하는 이가 많고, 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일반 계좌에 보관하는 이도 많다. 따라서 연금 계좌가 가진 운용 수익에 대한 과세 이연, 건강보험료 절감 등 혜택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