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지난주 원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 중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 주식 시장에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사흘(4~6일) 동안 시가총액이 71조원 줄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6일 주간 종가 기준으로 1419.2원으로 마감해 일주일 전보다 24.5원 올랐다. 7일 오전 2시에 끝난 야간 거래에서는 1423원으로 상승했다. 2022년 10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지난주 원화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약세였다. 달러화 기준으로 지난 한 주간 유로화(+0.03%)와 엔화(+0.10%), 파운드화(+0.26%), 대만달러(+0.51%) 등은 강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원화 가치는 1.86% 하락(원·달러 환율은 상승)했고, 위안화(-0.36%), 호주달러(-1.32%)도 약세를 보였다. 원화 가치 하락 폭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던 것이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과 반도체 경기 우려 등으로 11월부터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현상이 나타났는데, 계엄과 탄핵 추진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주식 시장은 지난 8월 블랙먼데이 당시보다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6일 코스피는 2428.16으로 마감하며, 지난 8월 5일 블랙먼데이 당시 수준(2441.55)을 밑돌았다. 코스닥지수는 연중 최저치로 추락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불과 사흘 만에 코스피에서는 57조원, 코스닥에서는 14조원가량 증발했다. 현대차(시총 43조원) 같은 글로벌 기업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만 1조원 넘게 내다 팔았다. 이렇게 국내 증시가 휘청이면서 전체 상장 주식의 3분의 1인 953개 종목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대왕고래 사업과 체코 신규 원자력 발전소 수출 관련주들이 줄줄이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과거 탄핵 정국 때는 환율이 크게 움직이지 않은 반면, 주가는 엇갈렸다. 2004년 탄핵 소추안 발의부터 기각까지 두 달여간 코스피는 14% 하락했지만, 2016~2017년에는 3% 올랐다. 하장권 LS증권 연구원은 “과거 탄핵 정국은 코스피 기업의 수출 증가율이 높아지는 시기였지만, 지금은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수출도 정점을 찍고 둔화되는 흐름이어서 증시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