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서학개미(미국 주식 개인 투자자)들이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출현으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반도체 주가가 흔들리자, 오히려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지난 27일(결제일 29일) ‘NVDL’을 2억8320만달러(약 408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순매수 결제 규모로 해외주식 1위에 올랐다.NVDL은 엔비디아 주가 일일 상승률을 2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딥시크 충격으로 NVDL 주가가 지난 27일 33.78%(24.7달러) 폭락했지만, 국내 투자자의 대규모 매수세가 나타났다. NVDL 주가는 지난 24일 73.11달러에서 27일 48.41달러로 곤두박질친 뒤 28일 56.88달러, 29일 52.29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투자자가 지난 27일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도 엔비디아였다. 같은 날 엔비디아 주가가 16.97%(24.2달러) 급락하는 동안 국내 투자자는 2억2256만달러(약 3210억원) 매수 우위를 보였다.

국내 투자자는 또 지난 27일에 미국 반도체 지수 일일 상승률을 3배로 추종하는 ETF인 ‘SOXL’을 1억7431만달러(약 251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SOXL 역시 같은 날 23.25%(7.59달러)의 낙폭을 기록했다.

딥시크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주가가 흔들렸던 이유는 고성능 AI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합당한지 의구심을 키웠기 때문이다. 딥시크는 558만달러를 들여 두 달 만에 오픈소스 AI 모델 ‘딥시크-R1′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메타 플랫폼스가 최신 AI 모델인 라마(Llama)3에 투입한 훈련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딥시크-R1의 서비스 품질은 기존 미국 오픈소스 AI 모델에도 뒤지지 않았다. 앞으로 AI 개발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관련 설비 투자(CAPEX)를 줄일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딥시크 사례가 AI 투자 감소나 미국 빅 테크의 부진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본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많았다. 서학개미의 저가 매수 판단에 부합하는 분석들이다.

씨티증권은 “미국 AI 기업의 지배력이 도전을 받을 수 있겠지만, 첨단 반도체 접근성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번스타인도 “딥시크가 동등한 성능을 10배 저렴한 비용으로 달성했다고 해도, 현재 모델 비용 증가율이 매년 10배씩 증가하고 있는 만큼 필요안 혁신이었다”며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의 AI 관련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했다.

웨드부시는 “결국 막대한 AI 인프라와 생태계를 구축한 미국 빅 테크가 우위를 유지할 것”이라며 “AI뿐만 아니라 로보틱스나 자율주행 등으로 앞으로 설비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딥시크 영향이 당분간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주가가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급등락하면 ‘음의 복리효과’가 커지는 점을 고려할 때 레버리지 투자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는 “딥시크는 글로벌 AI 기술의 판도를 다시 정의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장기적으로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가 중국 AI 기업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반도체와 AI 기술 관련 종목 주가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설 연휴 휴장으로 급등락은 피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조정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골드만삭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계약이 연간 단위로 이뤄지는 특성을 고려할 때 수요 변화가 2026년 이후 더 뚜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한국 메모리 반도체 공급 업체의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 평가 가치)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