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의 전방위 공세에 한국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수십년간 한국 핵심 사업이었던 석유화학·철강·조선부터 미래 핵심 산업으로 꼽히던 배터리 분야까지 중국 제품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국내 산업의 자금 지원 역할을 맡고 있는 금융산업은 중국의 파상 공세에서 안전할까. 2010년대 초반 중국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한국 금융사 ‘쇼핑’에 나섰던 적이 있었다. 중국 주요 은행도 대부분 한국에 진출해 있다.
다만 중국 금융사의 한국 금융시장 진출은 좋은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무리하게 인수했던 국내 금융사들을 다시 매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중국 자본이 한국 금융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은행과 보험, 증권 등 모든 금융권에 적지 않은 중국 자본이 깊숙이 침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 우리은행 인수까지 노렸던 차이나머니
중국 은행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중국 상업은행인 중국은행이 서울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후 중국 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공상은행이 서울에 사무소를 열었다. 현재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교통은행, 농업은행, 광대은행 등 6개 중국 은행이 국내에서 영업 중이다. 이들은 주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기업인이나 유학생을 대상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본격적으로 한국 금융사들 노렸던 시점은 2010년대 초반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도 중국은 이듬해 9.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초고속 성장으로 부를 쌓은 중국 금융사들이 한국 금융사 인수에 나선 것이다.
공상은행은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였던 광주은행 인수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2010년 광주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당시 우리금융 민영화가 지연되면서 실패했다. 이후에도 광주은행 인수를 위해 계속 문을 두드렸으나 성사되진 않았다.
한때 글로벌 인수합병(M&A)의 큰손으로 꼽혔던 중국 안방보험은 우리은행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했었다. 안방보험은 2014년 우리은행 지분 30%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나, 당시 경쟁자가 없어 매각이 취소됐다. 안방보험은 이후 우리금융 소수지분 4%를 사들여 이사회에 진출했다. 안방보험은 2015년 동양생명을 인수했으며 이듬해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도 품에 안았다.
◇ 한국 진출 성적 나쁘지만 공세는 계속
중국 금융사의 한국 시장 공략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내 금융사 인수에 뛰어들었던 중국 기업들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한국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안방보험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결국 파산했다. 안방보험이 인수했던 동양생명과 ABL생명은 현재 우리금융이 인수를 추진 중이다. 최근 한국 금융사들이 M&A 시장에 계속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과거처럼 중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인수 도전은 없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 은행들의 실적도 하락세다. 중국은행 서울지점의 지난해 2분기 당기순이익은 132억원으로 전년 동기(702억원) 대비 81% 급감했다. 같은 기간 광대은행 당기순이익도 197억에서 109억원으로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한국 금융산업을 중국에 내줄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한국 금융권에 자리를 잡으려면 은행 인수가 필수인데, M&A 시장에 은행이 매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금융은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데, 한국에서 중국 기업들은 그다지 신뢰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지금의 국내 금융산업 체제에서 은행이 매물로 나온다면 단순히 금융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 상황일 것”이라며 “은행이 M&A 시장에 나오기 전 정부의 조치가 먼저 나올 것이다”고 했다.
그렇다고 중국 자본의 한국 금융 시장 진출 시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보기술(IT) 대기업 텐센트는 특수목적법인(SPC)인 ‘스카이블루럭셔리투자’를 통해 2016년 카카오뱅크 설립 당시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4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유상증자 등에 참여해 총 917억원을 투입해 카카오뱅크 지분 3.72%를 확보했다. 중국 앤트그룹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도 케이뱅크 출범 때 주주로 참여했다. 알리페이는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토스 등과 제휴를 맺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에 밀리면 국내 금융 시장에도 분명 영향을 줄 것”이라며 “예전과 같은 직접 인수보다 전략적 제휴나 합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