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관세 전쟁’ 우려로 가상자산 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9만1000달러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관세 부과를 유예한다는 소식이 들린 지 하루 만에 10만달러로 반등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3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이 같은 변동성 때문에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디지털 금’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면 시장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상자산 친화적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아 하락장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글로벌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7.2% 상승한 10만738달러를 기록했다. 이더리움 가격도 하루 만에 10.5% 상승한 2808달러 수준이다. 그밖에 리플은 19.9%, 솔라나는 8%, 비앤비(BNB)는 7.9% 각각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 대한 관세 유예를 결정하면서 급락했던 가상자산 가격이 반등한 것이다.
며칠 사이 폭락과 폭등이 이어지며 수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 코인글래스(Coinglass)에 따르면, 전날 기준 파생시장에서 74만2778명이 24시간 만에 가상자산 역사상 최대 규모인 22억6000만달러(3조3100억원)를 청산당했다. 가상자산 가격이 오를 것에 베팅한 ‘롱포지션’ 청산 규모가 18억9000만달러(2조7700억원)에 달했다.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가격이 예상한 것과 반대로 움직여 손실이 발생하고 일정 수준의 증거금을 충당하지 못하면 강제 청산된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에 대한 비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과 함께 움직여 ‘디지털 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결제 수단이라는 쓸모를 넘어 투자 대상으로 바뀐 지 오래였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삼겠다는 말에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인 금의 지위까지 넘봤다.
정민교 프레스토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면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주식과 같이 움직이는 위험자산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했다
시장은 낙관론이 우세하다. 그간 상승세를 이끌었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친(親)가상자산 행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단기 조정을 거쳐 결국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낙관론의 또 다른 근거 중 하나는 트럼프 1기 행정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러 나라에 관세를 부과해 무역 전쟁을 촉발했다. 특히 언론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사기(Scam)라고 비판할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트럼프 1기 행정부 4년 동안 등락을 거듭하며 당시 최고가인 2만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시작된 2017년 1월 비트코인 가격은 996달러에 불과했는데, 1년 만에 1만3000달러를 돌파했다. 중국과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된 2018년에는 3400달러까지 급락했으나, 다시 반등해 2020년에는 2만달러를 돌파했다.
최승호 쟁글 연구원은 “관세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으나, 본격적인 하락장이 시작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라며 “시장이 안정화되는 시점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