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난임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껏 임신·출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임신·출산을 보험 보장 대상으로 편입하면서 상품 개발에 길이 열렸고, 여성특화 보험사를 표방한 한화손해보험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손해보험의 대표 상품인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의 원수보험료(가입자가 낸 총보험료)는 2023년 7월 출시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2628억원이다. 같은 기간 고객이 상품에 가입한 뒤 처음으로 낸 보험료를 뜻하는 월납환산초회보험료(신계약 매출액)는 292억원으로, 연평균 175억원 수준이다. 한화손해보험의 지난해 신계약 매출이 728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출의 약 24%가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 상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임신·출산·난임 관련 보장이다. 한화손해보험은 2023년 처음으로 상품(1.0)을 출시하면서 난임 치료를 보장하는 ‘난임 케어(care) 패키지’에 초점을 맞췄다. 또 고객이 출산을 하면 앞으로 5년 동안 기존에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의 액수를 2배로 확대했다.
한화손해보험은 한발 더 나아가 업계 최초로 출산지원금을 지급하는 3.0 상품을 지난해 11월 출시했다. 고객이 아이를 낳으면 100만원, 둘째를 출산하면 300만원, 셋째를 출산하면 500만원 등 총 9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상품은 임신·출산으로 입원하면 입원비도 보상한다. 지금껏 보상하지 않았던 제왕절개도 보장하는 제왕절개수술비도 신설됐고, 제왕절개 후 2년 동안 발생하는 흉터 치료에 드는 비용도 보상된다. 특히 출산 후 1년 동안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대신 납입해주는 납입면제 혜택도 있다. 이러한 특약 등은 모두 보험업계의 특허라 불리는 배타적 사용권을 받았다.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한화손해보험의 신규 여성 가입자 비중은 상품 출시 전 50% 미만에서 2023년 7월 상품 출시 후 1년 뒤 56%로 높아졌다. 특히 가임기(15~49세) 여성 고객 수는 같은 기간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장기 신규고객은 38.3%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보험사는 그동안 임신과 제왕절개를 포함한 출산, 유산 등은 보상하지 않았다. 보험은 급격하고 우연한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었을 때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기본인데, 임신·출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고객이 임신·출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필요 이상의 검사·검진을 받을 가능성이 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지난해 8월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임신·출산을 보험 보장 대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시행하면서 상품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임신·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환·질병을 보장하는 상품이 대다수다.
내년 6월 출시 예정인 5세대 실손보험도 임신·출산을 보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보생명은 HD현대 그룹사 29개 임직원을 대상으로 임신·출산 관련 고혈압·당뇨 입원 치료 등을 보장하는 ‘교보e출산안심보험’을 제공하며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2023년 10월 임산부·아기보험을 출시했다.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7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 현실에서는 역선택 관리가 가능하고 수요도 있는 임신·출산 관련 질환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라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보험사들은 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