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상장 논란이 일었던 기업들이 잇달아 기업공개(IPO) 일정을 미루거나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국회와 한국거래소 등에서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다. 같은 그룹 내 모회사와 자회사가 각각 별도로 증시에 상장하는 형태인 중복 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킵스파마(옛 케이피에스)의 자회사 배터리솔루션즈는 올해 안에 상장을 추진하려던 계획을 접기로 했다. 배터리솔루션즈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전날까지 상장예비심사청구 신청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을 진행했다”며 “취합 결과 주주들의 반대가 있었으므로 이번 상장예심청구 진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날 코미코도 자회사 미코세라믹스의 중복 상장 이슈를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들의 반발이 크고 중복 상장 우려가 회사 주가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상황을 회사가 고려한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회사는 미코세라믹스 상장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중복 상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단독] 코미코 "알짜 자회사 미코세라믹스 중복상장 우려 해소할 것")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는 거래소의 입장 표명에 상장예비심사 청구 계획을 보류했다. 한국거래소가 상장 청구 전에 SK엔무브 상장으로 인한 SK이노베이션 주주 피해를 막을 수 있는 합리적인 투자자 보호 계획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탓이다. SK엔무브가 상장하면, 지주사 할인으로 SK이노베이션의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상장 심사 단계에서 통상적으로 논의되는 사항으로, 거래소와 주관사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중복 상장 지적을 받아온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철회, 혹은 연기하는 이유는 이들 기업과 한국거래소가 대선을 앞두고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국거래소는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에 대해서도 상장을 승인해 주지 않았다.
원래 중복 상장 제한 등 일반 주주 권리 보호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었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다시 국회 의결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 재표결을 시도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주들의 소송 남발로 인해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한 의지로 다시 추진하는 만큼 이를 의식해 일단은 상장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