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쯤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대로를 따라 200m 정도 걷다가 오른쪽 이면도로로 접어들었다. 술집과 모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곳 어느 식당이 가게 밖에 설치해놓은 테이블에선 노년 남성 3명이 낮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워댔다. 바로 이 골목길에 서울시가 호텔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영하우스’가 있었다.
영하우스는 작년까지 ‘베니키아’라는 이름의 호텔이었지만, 서울시가 사들여 이른바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만들었다. 월 소득이 도시근로자 3인 가구 기준 541만원 이하인 39세 이하 청년, 대학생,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이라고 서울시는 밝히고 있다. 서울시와 건물 소유주 측은 올 초부터 건물 내부 16~21㎡(5~6평)짜리 원룸을 한 칸에 보증금 5000만원 , 월세(관리비 포함) 50만원 수준에 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입주민들과 부동산 중개인들은 영하우스에 대해 “값싼 원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곳에 신혼집을 차리고싶은 부부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호텔을 개조해 집을 만든 데 따른 구조적 문제다. 바닥 난방이 되지 않고, 히터만 사용할 수 있다. 창문도 원룸 한쪽 벽에 여닫이문 하나만 있어 환기도 잘 안 된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억지로 집어넣은 부엌도 문제다. 8월 입주한 신모(22)씨는 “한 구짜리 인덕션과 딱 내 어깨너비만한 조그만한 싱크대가 전부”라며 “라면 말고는 뭘 해먹을 수도 없다”고 했다.
입지 문제도 심각하다. 신씨는 “이름만 호텔이지 모텔촌에 사는 것”이라며 “길거리에는 담배 피우는 할아버지들, 버스정류장에는 노숙자들도 너무 많다. 직장을 오가고 마트와 편의점을 방문할 때 외에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입주자인 프리랜서 박모(26)씨는 “인근보다 임대료가 월 5만~10만원쯤 싸다는 것 외에는 장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홍보한 ‘커뮤니티 센터’와 ‘헬스장’ 등 부대 시설도 유튜브 광고와는 달랐다. 이날 이곳의 커뮤니티 센터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빨간 줄로 막혀 있었다. 헬스장 역시 러닝머신과 사이클 기구 6개 외에는 운동기구가 2개뿐이라 ‘헬스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건물 관계자는 “수도관이 오래돼 일부 세대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민원이 들어와 상수도관을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여기 살면서 결혼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1년째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직장인 정모(31)씨는 “저렴한 호텔촌 입지가 대부분 먹자골목·싸구려 번화가 아니냐”며 “집이 두 배로 넓어진다고 해도,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예정한 사람이 호텔을 개조한 집에서 살 수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