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확실하게 ‘건수’를 잡은 것 같네요.”

수도권에서 20년 넘게 토지 보상 관련 업무를 한 감정평가사 J씨는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토지 매입 사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여러 사람이 돈을 모은 뒤 거액의 대출을 일으킨 점, 아파트 특별공급 등 부가 수익을 챙기는 데 꼭 필요한 정도로 지분을 나눈 점 등이 ‘프로 투기꾼’ 뺨친다는 것이다.

LH 일부 직원들의 광명ㆍ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의 한 토지에 8일 오후 묘목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이들 상당수는 LH에서 토지 보상·매입 등을 담당하며 일반인보다 토지 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에서는 “업무 지식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임대 수익도 안 나오는 땅에 대출까지 받아서 수억원을 묻어두는 위험을 감수한 배경에는 남들은 모르는 핵심 정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LH 직원 땅 투기 대부분이 쪼개기 거래

지금까지 드러난 LH 직원의 토지 거래는 대부분 여러 명이 땅을 공동 매입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단독 명의 거래는 2017년 8월 1억8000여만원을 들인 광명 옥길동 밭(526㎡) 정도다. 경기 하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수익성이 큰 땅은 비쌀 수밖에 없기에 소액 투자자들은 주로 쪼개기 투자로 지분을 모아 사들인다”고 말했다.

LH 직원 4명이 포함된 7명은 지난해 2월 말 공동 명의로 시흥시 과림동의 밭 3개 필지 5025㎡를 22억5000만원에 샀다. 이들은 이 땅을 5개월 뒤인 7월 23일 4개 필지로 분할했다. 나뉜 땅은 각각 1163~1407㎡ 크기로 모두 1000㎡가 넘었다. 국토교통부가 공공사업으로 1000㎡ 이상 토지가 수용될 경우 토지주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는 제도를 입법예고하기 엿새 전의 일이었다.

공공주택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 인근 신축 아파트 시세를 감안할 때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받는다면 인당 최소 2억~3억원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LH 직원들이 절묘한 시점에 땅을 쪼갬으로써 토지 보상비에다가 수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까지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보상 수익을 극대화하는 지분 쪼개기”라며 “국토부나 LH 내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땅을 나눈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신도시 발표 때마다 번번이 사전 정보 유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후 지난달까지 3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 8곳의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번번이 신도시·택지 개발 정보가 시중에 유출되며 혼선을 빚었다.

‘분노의 계란’ 얼룩진 LH 본사 - 9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유리창이 LH 임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던진 계란으로 얼룩져 있다. /김동환 기자

2018년 9월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던 신창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자기 지역구인 경기 과천을 포함한 수도권 8개 지역을 정부가 신규 택지 후보로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3개월 뒤 정부는 과천을 포함한 4개 지역을 수도권 신도시로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국토부 소속 경기도 파견 공무원이 LH로부터 택지 개발 후보지 자료를 받았고, 이 자료가 과천시장을 거쳐 신 의원에게 넘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 5월 3기 신도시에 포함된 고양 창릉에서는 ‘도면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LH 직원이 대외비였던 ‘고양권 동남권개발계획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겼고, 이 사진은 부동산업자·분양사업자 등을 거쳐 정부의 신도시 발표 전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까지 올라왔다.

2005년 2기 신도시 투기 사건을 수사한 전직 검찰 간부는 “3기 신도시 첫 발표 때부터 유출 사고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한 정부와 LH가 결국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의 ‘간을 키워’ 직접 투기까지 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