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의 한 단독주택 단지에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보다 3~5m 높게 쌓아 올린 집터에 2~3층 높이 신축 단독주택 10여채가 모여 있었다. 집집마다 벤츠, 렉서스 등 고급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흙담이 있는 주변 농가(農家) 사이에서 위압적인 성(城)처럼 솟아있는 이 단지는 2018년쯤 서울·분당 등 외지인이 집중적으로 땅을 사들여 건축한 것이다. 이웃 농가 주민 김모(여·78)씨는 “외지 사람인 건 들었는데, 왕래가 없어서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 부지

이 단독주택 단지는 2019년부터 시세가 치솟았다. 그해 3월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독성리 단독주택 맞은편으로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거주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반도체 투자 발표 전 ‘접경지 투자’ 불났다

본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계획 도면과 등기부등본을 대조한 결과, 외지인이 사들인 독성리 단독주택 단지처럼 ‘접경지 투자’로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2017년부터 클러스터 부지가 확정·발표된 2019년 3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개발 예정지와 맞닿은 바깥쪽 토지 거래는 총 60건이었다. 이 중 36건은 매수자가 용인 주민이 아닌 타지 사람이었고, 지분을 나눠 산 경우가 많아 총 매수자는 80명이었다.

원삼면 독성리 일대는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낙후한 농촌 마을이었다. 용인시청에서 18㎞나 떨어져 아무 관심도 없던 땅에 2018년 전후로 서울 등에서 투자자들이 몰려와 고급 주택단지가 조성됐다. 독성리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한건수(81)씨는 “3년 전부터 주말이면 여자들이 2~3명씩 짝을 지어 와서 땅을 보고 가면서 ‘집을 짓고 살 것’이라고 했다”며 “여기에 왜 집을 지으려 했는지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클러스터 개발이 발표된) 2019년 3월에는 차 트렁크에 현금 수억원을 싣고 와서 ‘살 수 있는 땅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클러스터 경계면 바깥 부지에 여러 사람이 지분을 쪼개서 사는 등 투기로 의심되는 거래도 많았다. 2018년 1월 서울·부산·경기도 구리시 등에 사는 6명이 모여 독성리 토지 330㎡를 6000만원에 사더니 한 달 만에 인근 토지 830㎡를 1억3800만원에 추가 구매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기획부동산 업체의 작품 같은데,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작업한 것 같다”고 했다.

◇국회의원 가족이 땅 사니 도로 계획 나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지 바깥 땅이 집중적으로 거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도시나 택지지구로 수용되는 땅을 사는 것보다 연접 지역의 땅을 사는 게 더 이득인 것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한 토지 투자 전문가들은 “신도시로 수용되는 땅의 보상금을 노린 투자는 아마추어”라며 “신도시 연접 지역 땅은 잘만 고르면 10~20배 시세 차익을 얻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도시 설계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신도시나 택지지구로 바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 특히 교차로가 생기는 땅은 시세가 수십 배 뛰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여당 A 국회의원 누나와 그 의원 보좌관 출신인 경기도의원 가족 등 4명이 2018년 경기 광주시에서 사들인 땅은 ‘접경지 투자의 정석’으로 통할 정도이다. 이들이 고산2택지지구 주변 임야(6409㎡)를 사고서 한 달 만에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이 고시됐고, 맹지였던 이 땅 바로 옆에 폭 12 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 땅의 현재 시세는 처음 샀을 때보다 10배 가까이 올랐다.

정부가 건설하는 3기 신도시 부지 주변 땅도 최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부동산 거래 플랫폼 디스코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 왕숙신도시 인근인 오남읍 양지리의 최근 6개월 평균 땅값은 3.3㎡당 482만원으로 이전 6개월 평균보다 137% 올랐다. 경기 하남의 교산신도시 인근 신장동 역시 최근 6개월 사이 땅값이 80% 넘게 올랐다. 하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2018년 말 3기 신도시가 발표되면서 교산지구 주변 돈 되는 땅은 이미 다 팔려서 이젠 매물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용인=조유진·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