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생애를 책임지는 복지로 유명한 스웨덴은 한때 ‘임대주택 천국’으로도 유명했다.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20%로, 한국(7.45%)의 3배 수준이다. 여기다가 20%의 민간임대주택도 공공임대 수준으로 임대료가 통제되고 있다. 스웨덴의 임대료 인상률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지역단위로 세입자 단체, 지자체, 건물주단체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데 연간 인상률이 1~2% 정도에 불과하다. 임대주택에 한번 입주하면 평생 거주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이 상속대상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엄격한 소득제한이 있지만, 스웨덴은 18세 이상이면 소득, 재산과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스웨덴은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대권 주자들이 목표로 하는 ‘임대주택 모범국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나 살고 싶은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겠다고 역설했다. 집권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소득제한 없이 중산층도 입주, 30년 이상 임대 거주할 수 있는 기본주택을 임기 내 100만 가구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중산층도 살고 싶어하는 품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해 임대주택 재고를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등 이른바 임대주택 모범국가들도 집값이 폭등하고 임대시장은 대기자 급증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임대주택 천국의 현실은 10년 이상 입주대기, 암시장 성행
스웨덴의 저렴한 임대주택을 이용하려면 평균 9년을 기다려야 한다. 특히 수도인 인구 100만명의 스톡홀름은 50만 명이 대기하고 있는데, 입주 대기기간은 평균 11년이다. 도심 인기지역은 20년 이상이다. 입주 대기자들은 통제 임대료보다 50~ 70% 더 내고 암시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세컨드들이 시장’이라는 ‘암시장’은 임대료 통제를 받는 공공, 민간의 임대주택 공식 세입자가 자신의 집을 웃돈을 받고 전대(轉貸)하기도 한다. 창고를 불법개조해서 임대를 주거나 작은 방들을 쪼개 여러 명에게 임대주는 사업도 유행이다. 스톡홀름에 본사를 둔 음악 스트리밍 회사 스포티파이는 정부에 주택난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사업장을 옮길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 설문 조사에서 기업의 30%가 주택난으로 직원을 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임대난과 저금리로 내 집 마련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집값이 18% 급등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소속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63)가 임대주택난은 과도한 임대료 통제로 주택공급이 감소한 탓이라며 신축아파트에 한해 임대료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임대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침해한다”면서 좌파당이 극우 정당과 연합해서 총리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뢰벤 총리가 사임했다가 복귀하는 등 해프닝을 빚고 있다.
◇공공임대 30%넘는 네덜란드 소득제한 도입했지만, 대도시는 14년 대기해야
네덜란드는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에서 32%나 된다. 공공임대주택은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데 사회주택이라고 불린다.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자금지원과 토지를 저렴하게 공급받는 등 각종 혜택을 받고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 120년 전에 이미 관련 법이 만들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도시에서는 젊은 층에는 그림의 떡이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평균 대기시간이 7년, 암스테르담은 14년, 암스테르담 외곽의 인기주거지역 랜즈미어는 22년을 기다려야 한다. 애초 공공임대주택은 입주에 전혀 소득제한이 없었다. 이 때문에 소득이 늘어난 중산층, 고소득층이 공공임대주택에 계속 거주하고 오히려 저소득층이 입주를 못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2005년에 소득제한을 도입했다. 올해는 연 수입 3만9979유로(5389만원)가 기준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민간과 공공임대가 모두 임대료 통제 대상이지만, 주택이 넓고 시설이 좋은 임대주택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임대료 통제를 받지 않는다. 공공임대주택을 운영하는 비영리 법인의 수익성을 높여주고 고급 임대주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서이다. 민간임대 주택의 70% 정도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여유 있는 계층은 제값 내고 임대해 살거나 내 집을 마련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무기계약인데다 한번 입주한 세입자가 소득이 늘어나 입주 자격이 없는데도 나가지 않아 입주 대기 난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암스테르담 중심가는 공공주택 임대료가 월 500-600유로 정도지만, 스웨덴처럼 암시장을 통해 1200유로에 불법 전대되는 사례도 많다.
◇민간 주택도 임대료 통제 공급량 급감
독일은 자가보유율이 40%에 불과하다. 공공임대가 10% 미만이고 민간임대가 40%나 되지만, 민간임대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속 거주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 폭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임대료 상승은 멈추지 않았다. 새로 짓거나 개·보수를 한 주택에 대해선 임대료 통제 예외를 뒀는데, 집주인들은 이를 활용해 월세를 대폭 올렸다. 독일은 임대료 통제를 위해 2015년부터 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 대해 지역별로 건축 연도, 집의 위치, 면적 등을 고려한 ‘표준 임대료’를 설정, 기준보다 10% 이상 월세를 못 올리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전체 180만여 가구 중 147만 가구(83%)가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베를린에서는 임대주택 부족과 임대료 급등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베를린시는 지난해 2월 월셋집의 90%에 해당하는 150만 임대인이 월세를 2019년 6월 수준으로 5년간 동결해야 했다. 표면적으로 10% 인하 효과를 냈지만, 임대주택 건설이 반 토막 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고 실시 1년 만에 위헌결정이 났다.
[’임차인 파라다이스’ 명성 유지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비결]
토지 비축, 소득 제한… 꾸준한 주택 공급 정책 추진
주민 80%가 임대주택에 사는 오스트리아 빈은 여전히 ‘임차인 파라다이스’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주택의 60%가 공공 임대주택인데 입주 대기 기간은 평균 2년 정도로 비교적 짧다. 거의 100년간 ‘사회민주당’이 빈 시정을 장악, 임대주택 건설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결과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빈시를 선거로 장악한 사회민주당은 ‘세금 테러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의 부유층 증세로 재원을 마련, 10년간 6만여 가구의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좌파 시 정부는 경제 위기와 높은 세금 탓에 매물로 쏟아져 나온 토지를 저렴한 가격에 대거 사들여 임대주택 건설에 활용했다. 독일 합병 등으로 축출됐던 사회민주당은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시정을 장악, 지금까지 집권하면서 일관된 주택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꾸준한 주택 건설이다. 빈 시청 자료로는 연간 주택 건설이 1000명당 3.8채로, 유럽 도시 중 공급이 많은 편이다. 빈은 난민 유입 등 인구가 급증하면 주택 건설을 크게 늘린다. 시 정부가 사유지를 미리 사들여 주택 건설에 대비하는 ‘택지 비축’ 제도도 공급 확대에 도움이 됐다. 소득 상위 25%는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다. 또 공공 임대주택 중 비영리 법인이 운영하는 사회주택은 건축비의 12.5%를 일종의 보증금으로 내고 매년 1%를 차감한다. 보통 보증금이 1300만~4800만원 정도인데, 임대주택 건설 자금으로 쓰인다. 임대주택이 많다고 해서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3월 말 기준으로 연간 집값 상승률이 10.94%로, 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저금리 등으로 주택을 자산 운용 기법으로 여기는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