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탓에 주가가 급락하는 등 자산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회색코뿔소’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회색 코뿔소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임박하기 전까지는 외면하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펜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사상 유례 없는 초저금리와 유동성 과잉이 주가와 집값을 폭등시켰다. 코로나가 마무리되면 당연히 뒤따를 유동성 축소와 금리인상이 자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충격’이라는 ‘회색코뿔소’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감소, 완만한 금리인상, 과잉 유동성, 전세대란 가능성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집값이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돌변하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135건으로, 리먼쇼크로 가격이 급락했던 2008년 11월( 1344건) 과 남유럽 재정위기와 보금자리 주택공급폭탄 등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가격이 급락했던 2013년 1월(1213건)보다 더 적었다.
실거래가 통계가 집계된 2006년이후 서울의 월별 평균 거래량은 6973건이며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때는 2006년 11월의 2만5382건이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로 전환했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4주차(24일 기준) 주간 아파트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전주 대비 0.01% 가격이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한 건 2020년 5월25일 조사 이후 처음이다. 광진(-0.01%)·동대문(-0.02%)·성북(-0.02%)·강북(-0.03%)·도봉(-0.02%)·노원(-0.03%)·은평(-0.02%) 등 강북 지역에서 주로 가격이 하락했다.
◇빨라진 금리인상과 유동성 축소, 요동치는 자산시장
완만한 금리인상은 경기 회복의 신호이기 때문에 오히려 집값에 호재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완만한 금리인상론은 폐기됐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 11월, 올 1월 등 이미 3차례 금리인상을 단행, 기준금리가 1.25%까지 올랐다. 주요 국가중에 가장 빠른 속도이다.
전세계 금리에 영향을 주는 미국의 기준금리는 당초 올 연말 인상에서 올 3월 인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작년 12월 소비자물가가 7% 올라 4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긴축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연내 4차례 인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연말에는 2%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리 오르면서 경매, 생숙, 오피스텔 등 투자용 상품 이미 찬바람
주택담보 대출 금리도 오름세이다. “금리 걱정할 필요 없다”는 낙관론이 대출 이자 폭탄 걱정으로 돌변하고 있다. 입주물량 감소는 해소되지 않았지만, 사전청약을 통한 공급폭탄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정부는 올해 약 7만 가구를 사전청약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다. 작년 공급 물량(3만8006가구)의 두 배이다. 분양가 상한제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되는 물량들이다. 사실상 ‘반값 아파트’ 물량 폭탄이다.
임대차법 개정 영향으로 7월 전세대란 전망도 연초부터 전세시장이 안정되면서 빗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금리인상의 효과와 대출 규제로, 전세금 인상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일부 지역에서는 하락세로 전환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경매시장의 낙찰률은 42.7%로, 연중 최저치다. 전국의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지난해 11월 104.2%에서 12월 100.6%로 낮아졌다. 서울의 작년 12월 아파트 낙찰률(46.9%)은 전달(62.2%)보다 15.3% 포인트 떨어졌다. 아파트 낙찰가율도 전달 대비 4.6% 포인트 낮아졌다.
수백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던 생활형 숙박시설과 오피스텔에서 일부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무피(제로 프리미엄)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방의 아파트 청약경쟁률도 낮아지고 있다.
◇집값 급락기, 하우스푸어의 공포
큰 폭의 조정 가능성도 있다. 2010년대 집값 침체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서울 경기도 인천은 4~5년 지속됐다. KB주택통계에 따르면 2010년1월~2013년 강남구가 9.41%, 서울이 8.78%, 수도권이 7.91% 하락했다. 하지만 강남권의 경우, 고점대비 거의 반토막에 나온 급매물 정도만 거래됐다. 판교 등 신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집값이 본격적으로 침체하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쉽지 않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무려 20여 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약발은 거의 없었다. 이른바 영끌로 내집마련을 한 많은 가장들이 하우스 푸어(빚을 내 집을 샀다가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계층)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집값 급락기 대응 전략 미리 준비해야
위기의 가능성이 커지는 시기인 만큼 낙관론과 비관론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빚을 내서 주택을 구입했다면 금리 상승기에 늘어난 원리금 상환 부담에 대비해야 한다. 자산포트폴리오 조정 등에 대해 미리 고민해둘 필요가 있다. 무주택자들은 집값이 조정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신도시 중심의 사전 청약이 최우선이다. 신규분양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고 있는 만큼, 무주택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내집마련 수단이다. 문제는 가점이 낮은 경우이다. 기존 아파트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시세와 장기추세를 비교해서 일정 정도 가격이 하락했을 때 구매할 수 있는 지역과 아파트를 골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유주택자들은 갈아타기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집값 침체기에는 인기지역과 비인기 지역, 신축과 구축의 가격격차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집값 하락기는 빚이 적은 1주택자와 무주택자들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청약시장도 조정기로 접어들면 경쟁률이 떨어지는 만큼, 청약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