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은평구 갈현1동 빌라촌 곳곳엔 ‘초등학교 절대 사수’라고 적힌 빨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이 작년 12월 대의원 회의에서 초등학교 예정 부지에 학교 대신 아파트를 추가로 짓기로 결정한 것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이 붙인 것이다. 이들은 “아파트 4116가구를 지으면서 초등학교가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교 신설이 어렵다면, 분양 물량을 늘려 분담금을 덜 내는 게 낫다”는 조합원도 많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재개발 지구에 초등학교 예정 부지를 해제하고 아파트를 추가 건설하는 것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상훈 기자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학교 예정 부지를 놓고 조합원끼리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저출산 시대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신설이 어려워지자 아파트를 추가로 건설해 경제적 이득을 얻자는 쪽과 예정대로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비슷한 사회적 갈등을 막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 부지를 둘러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출산 고착화로 학교를 새로 지을 만큼 학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전국 초·중·고등학생은 532만3075명으로 4년 전(572만5260명)보다 40만명 넘게 줄었다. 신도시나 새로 조성한 택지지구엔 학교를 짓지만, 기존 도심에선 학교 신설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감소로 기존 학교도 수용 여력이 충분해 신도시가 아니면 굳이 학교를 신설하지 않는다”며 “초등학교는 1.5㎞ 이내, 중·고등학교는 대중교통으로 30분 안에 통학할 수 있으면 학생을 분산 수용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수도권에선 학교 신설이 무산돼 추가로 아파트를 짓는 경우가 속속 생기고 있다. 작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평촌자이아이파크’(2637가구)는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이 초등학교 부지를 반납하면서 아파트 1개 동(棟)을 더 짓고 있다. 한 달 먼저 입주한 안양시 호계동 ‘평촌어바인퍼스트’도 초등학교 설립이 취소돼 아파트 304가구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학교 신설을 취소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내년 4월 3500가구가 입주하는 대전 용인지구에선 학생들이 임시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2019년 대전교육청이 학교 부지를 반납했는데, 아파트 분양 때 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이 늘면서 학생 수가 예상치(480여명)의 1.5배인 750여명으로 늘어난 탓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학교 같은 기반시설 용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규모를 줄이더라도 주거지 밀집 지역엔 유치원·초등학교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학생이 부족한 학교엔 고령자 복지시설을 넣는 것 같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