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 대명동 전용면적 26㎡짜리 빌라가 최근 한 부동산 중개사이트에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월세가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어서 확인해 보니 매달 내는 관리비가 41만원이었다. 충남 아산시 온천동의 신축 빌라(전용 59㎡)는 방과 화장실이 각각 2개씩 있는데도 월세가 27만원에 불과하다. 대신 관리비가 월 28만원이다. 사실상 세입자는 월세 55만원을 내는 꼴이다.

봄 이사철을 맞아 전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 매물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12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4만2193건으로, 한 달 전인 3월12일 5만1338건에 비해 17.9%(9145건) 감소했다. 사진은 12일 서울의 한 부동산 사무소의 모습./뉴시스

오는 6월 1일부터 전·월세 신고제를 어긴 집주인에게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가운데, 월세는 30만원이 채 안 되는데 관리비가 비정상적으로 비싼 매물이 전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전·월세 신고제에 따라 월세 30만원 또는 보증금 6000만원이 넘는 전세·월세 거래는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작년 6월 시행됐는데, 과태료 부과는 1년의 유예 기간을 뒀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거래를 투명하게 해 세입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임대 수익이 공개돼 세금을 더 내는 것을 피하려는 일부 집주인은 월세를 30만원 미만으로 내리고, 관리비를 대폭 올려 수입을 보전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런 꼼수는 관리비 명세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아파트가 아닌 서민이나 대학생, 청년층이 많이 찾는 소형 빌라나 원룸, 오피스텔 등에서 흔하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집을 옮길 여건이 안 되는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관리비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관리비가 과도하게 비싸다는 지적에 집주인들은 “월세를 최대 5%밖에 못 올리게 하고서 세금과 대출이자 같은 비용은 계속 늘어나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지방에서 원룸을 세준 한 임대인은 “나도 대출받아 산 집에 세입자를 들인 건데, 새 임대차법 때문에 시세만큼 월세를 못 올리면 관리비 명목으로라도 현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비가 원룸이나 오피스텔 거주자들의 실질 임대료를 높이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관련 통계도, 감시 규정도 미비한 상황이다. 15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나 50가구 이상의 집합건물은 법에 따라 관리비 명세를 공개하고, 회계 감사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원룸이나 소규모 빌라는 이런 의무가 없어 집주인이 마음대로 관리비를 올릴 수 있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분양 기준) 평균 관리비는 1㎡당 1151원, 서울은 1397원이다. 원룸 같은 소형 빌라가 통상적으로 아파트보다 관리비가 비싼 것을 감안해도, 청소비나 방범비 등을 이유로 관리비를 한꺼번에 10만~20만원씩 올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토교통부는 “과도한 관리비가 부과될 경우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시장 흐름에 맞게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면 임대 수익에 대한 과세도 가능하고, 세입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새 정부는 세입자 보호라는 큰 원칙은 지키면서 정상적으로 시장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임대차 3법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