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으로 국내 10대 건설사인 롯데건설이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건설은 롯데그룹 다른 계열사의 도움으로 한 달여 만에 1조5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마련했고, 대표이사 교체 카드를 꺼내며 경영 쇄신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를 수습하려고 계열사들이 전방위 지원을 펼친 탓에 롯데그룹 전체의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 측은 “이제는 롯데건설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한 달 만에 계열사서 1조4500억 ‘수혈’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비상장사인 롯데건설은 지난달 18일부터 최근까지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로부터 총 1조4500억원을 지원받았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유상증자를 통해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로부터 2000억원을 투자받았고, 롯데케미칼에서 추가로 5000억원을 빌렸다. 이달 들어서는 롯데정밀화학(3000억원)과 롯데홈쇼핑(1000억원)에서도 돈을 빌렸다. 롯데건설은 또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3500억원을 빌리면서 롯데물산과 자금 보충 약정을 맺었다. 롯데건설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롯데물산이 부족한 자금을 보충해주겠다는 것이다.

롯데건설이 이처럼 계열사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시장에서 PF 대출 만기 연장과 차환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우발채무 규모는 6조7491억원으로 KIS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건설사 중 가장 많다. 우발채무는 아직까진 빚이 아니지만 향후 조건에 따라 채무로 잡힐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가리킨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토목이나 플랜트 등 사업 영역이 다양한 다른 대형 건설사에 비해 국내 주택사업 비중이 높아 부동산 경기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했다.

우발채무 가운데 절반가량인 3조1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연말까지 집중돼 있다. 만약 만기 연장이나 차환에 실패하면 보유한 현금으로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올해 9월 말 기준 롯데건설이 자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788억원 수준이다. 12월 일반에게 분양하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에서 약 1조원의 공사비가 나오지만, 향후 1~2년에 걸쳐 받게 된다. 이런 가운데 PF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권사와 금융사가 유동성 회수에 나서자 계열사까지 동원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롯데 측 “일시적 자금 경색”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에서 불거진 자금난이 그룹 전반으로 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롯데건설에 약 6000억원을 지원한 롯데케미칼은 지난 18일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호텔롯데도 지난 16일 보유 중이던 롯데칠성음료 주식 27만3450주를 전량 매각해 현금 362억원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이달 들어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롯데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향후 6개월~1년간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나 업황 개선 추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다만 롯데그룹은 건설발 충격은 ‘일시적 위기’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1일 열린 유상증자 콘퍼런스콜에서 “롯데건설이 보유한 사업장은 대부분 우량하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일시적 자금 경색 영향을 받고 있다”며 “구체적 숫자를 밝히긴 어렵지만 롯데건설의 상당한 PF 금액이 올해 4분기를 포함해 내년까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롯데건설 관계자도 “일부 PF 대출은 차환에 성공했고, 차입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연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PF 대출을 상환할 여력은 충분하다”며 “미착공 대형 사업장이 착공에 들어서면 PF 우발채무의 상당수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