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어 최근 집중호우로 갓 입주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침수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국내 아파트의 품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소한 불량을 제외하고 입주자와 건설사 간 합의를 못 해 국토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관련 분쟁이 매년 3000건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튀르키예 차나칼레 대교)을 건설하고, 중동에서 조(兆) 단위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건설 강국에서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짓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 아파트의 시공 하자 문제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중에서도 유명무실한 감리 제도와 무리한 비용 절감을 강요하는 재하도급 관행이 근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제 기능 못 하는 감리
지난해 1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와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붕괴 사고의 공통점은 현장 부실시공을 감시해야 할 감리업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화정아이파크는 양생이 어려운 한겨울에 콘크리트를 타설했고,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임시 구조물(동바리)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 시공 업체가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게 근본 문제지만, 현장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해야 할 감리도 이를 짚어내지 못한 것이다. 안단테자이 지하 주차장 붕괴도 설계 도면 작성과 시공 과정에서 필수적인 철근 부품을 빠트렸다. 현재까지는 담당자의 실수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수와 오류를 현장에서 잡아내는 것이 감리다.
감리란 시공사가 설계대로 공사를 하는지 현장에서 점검하는 역할이지만, 일선에선 ‘있으나 마나’라는 말이 나온다. 감리가 제 기능을 하려면 발주처와 시공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현재는 발주처가 감리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맺는다. 감리업체 입장에선 발주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리업체에 근무하는 인력풀도 문제로 꼽힌다. 감리 업무는 기술 자격증 보유자나 건설 관련 일을 일정 기간 이상 하면 할 수 있다. 감리업체들은 일감을 따내려고 건설사 출신이나 주요 발주처인 건설 공기업 출신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한 건설 현장소장은 “감리업체가 현장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제출한 사진만 확인하고 사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감리와 관련해 해외와 국내 현장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국내 건설사가 시공한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현장은 공사 인력 3명당 감리 1명이 붙었다. 반면 국내 롯데월드타워는 공사 인력 10명당 감리 1명이었다. 역시 국내 업체가 지은 튀르키예 차나칼레 대교 건설 현장에는 공사 인력 7명당 감리 1명이 있었지만, 국내 이순신대교는 공사 인력 23명당 감리 1명이었다.
아파트 현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 공사 현장 166곳 가운데 법에 정한 감리 인력 기준을 총족한 현장은 24곳(14.5%)에 불과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감리 인원 기준을 어겨도, 대부분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군산대 명예교수)은 “외국은 감리뿐 아니라 발주자도 함께 건설 현장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라며 “이렇게 해야 근본적인 안전과 건축물 품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발주자의 감리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산업특별법 개정안이 2020년 9월 발의됐지만 3년 가까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무한 비용 절감 부추기는 재하도급
무한 비용 절감을 부추기는 최저가 낙찰제와 재하도급 관행도 안전사고나 시공 하자를 부추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국내에서 300억원 넘는 공공 공사는 가격뿐 아니라 기술력도 같이 평가하는 종합심사제가 있다. 하지만 민간 공사는 대부분 최저가 낙찰제를 활용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공정별로 중소 건설사에 하도급을 주는데, 이때 이윤을 최대화하려고 가격을 낮게 쓴 업체를 선정한다. 또 하도급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재하도급에 재재하도급까지 여러 단계로 내려가는 경우도 많다. 2021년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 현장 붕괴 참사 당시 재개발 조합이 시공사에 지불한 공사비는 평(3.3㎡)당 28만원이었는데, 두 번의 하도급을 거치면서 단가가 평당 4만원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