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집값 상승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할 경우 다시 규제(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공공 임대주택 단지를 찾은 자리에서 최근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값이 치솟는 상황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달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린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등 강남권 아파트 값이 수억 원씩 가파르게 오르더니, 규제 해제와 관계없는 마포·용산·성동구 등으로도 가격 상승세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2월 아파트 거래량은 벌써 4000건에 다다랐고, 고가 지역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매매 평균 가격은 역대 최고인 13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서울 아파트 값은 작년 여름 대출 금리가 내리고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확산하면서 급등했다. 그러자 정부는 작년 9월부터 대출 규제를 강화했고, 지난 1월까지 서울 아파트 시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난달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면서 강남권 갭 투자(전세 끼고 매수)가 가능해지자 매수 심리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런 가운데 기준 금리 인하와 맞물려 주택 담보 대출 문턱이 낮아지자 서울 다른 지역까지 매수세가 확산한 것이다. 일각에선 실물 경기 침체로 기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풀어 집값을 자극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잠실 ‘국민평형’이 30억

이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26일 30억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14일 잠실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된 직후 역대 최고가인 28억8000만원에 거래됐는데, 2주 만에 다시 1억2000만원이 뛴 것이다. 대치동과 삼성동에서도 최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대치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된 지난 13일 40억원에 팔려 5개월 만에 3억5000만원 올랐다. 삼성동 ‘삼성힐스테이트 1단지’ 전용 84㎡ 역시 지난달 25일 30억원에 거래돼 직전 최고가(28억8000만원)보다 1억2000만원 뛰었다.

그래픽=송윤혜

강남권 아파트 값 상승세는 한국부동산원 주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달 3일 기준 송파구 아파트 값은 일주일 새 0.68% 급등했다. 강남구(0.52%)와 서초구(0.49%) 역시 오름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강남 3구 아파트 값이 뛰자 마포구(0.11%)와 용산구(0.10%), 성동구(0.08%) 등 한강 변의 인기 지역으로도 상승세가 확산하고 있다. 마포구 대흥동 ‘마포그랑자이’ 전용 84㎡가 지난달 21억6000만원에 팔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고, 성동구 옥수동 ‘옥수어울림’ 전용 84㎡도 지난달 20억3000만원에 거래돼 처음으로 20억원을 넘었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잠실 호가가 급등하고 대출이 풀리면서 비교적 진입이 쉬운 마포 신축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891건으로 집계됐다. 2월 계약분에 대한 신고 기한이 이달 말까지로 20일가량 남았는데, 벌써 1월 전체 거래량(3329건)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2월 거래량은 5000건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작년 8월(6531건) 이후 줄곧 3000건대에 머물렀다. 고가 지역 위주로 거래가 늘면서 현재까지 집계된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2억9007만원으로 작년 9월(12억6095만원) 기록한 역대 최고가를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 급증

◇토허제 해제 불쏘시개 논란에 吳 시장 “다시 규제 가능”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 결정이 아파트 값 상승세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고, 이어 기준 금리 인하로 대출 문턱까지 낮아지면서 기름을 부었다고 보고 있다. 주택 담보 대출을 받기가 쉬워지고 이자 부담이 줄자 매수 시기를 저울질하던 ‘똘똘한 한 채’ 대기 수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시는 집값이 하향 안정화됐다고 보고 규제를 해제했다고 하지만, 서울 주요 지역은 수요 대비 공급이 늘 부족해 조금만 규제를 풀어도 금방 아파트 값이 급등한다”며 “경기 둔화로 기준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성급하게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면서 투기 수요를 자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가 아파트 값 상승을 촉발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은 “지금까지는 (집값 상승세가) 예상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도하다면 또다시 규제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