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 도시·건축위원회를 통과해 49층짜리 럭셔리 호텔 개발이 결정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프리마 호텔 부지에는 원래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부동산 개발 업체가 최고급 주거 시설을 지으려고 2022년 약 4000억원을 들여 코로나로 경영난을 겪던 호텔 부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등의 문제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작년 5월 신세계프라퍼티가 지분 50%를 얻어 사업에 뛰어들면서 호텔 개발로 방향이 바뀌었다. 주거 시설보다 고급 호텔을 짓는 게 사업성이 더 좋다는 판단이었다.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빠르게 회복되는데, 서울 강남권에 이들을 수용할 최고급 호텔이 없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기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이 K드라마, K푸드 인기와 함께 돌아오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호텔 개발 열기가 불고 있다. 관광 업계는 올해 역대 최고였던 2019년(1750만명)보다 많은 약 1800만명의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호텔 객실 수는 코로나 이전보다 줄어든 상태여서 객실 단가 상승 등 호텔 사업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업황이 좋아지자 호텔과 관련한 부동산 개발 계획이 뒤바뀐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호텔 건물을 다른 용도로 바꾸려던 계획이 전면 취소되거나 사무실이나 주거 시설로 개발하려던 땅에 호텔이 들어서는 곳이 나오고 있다.
◇오피스·주거에서 다시 호텔로
미국계 사모 펀드 블랙스톤은 작년 말 1200억원을 투자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M그룹 강남 사옥을 사들였다. 블랙스톤은 이 건물을 호텔로 용도 변경해 운영할 계획이다. 블랙스톤 관계자는 “글로벌 호텔 체인과 파트너십을 맺어 획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앞서 작년 9월엔 미국계 투자사 안젤로고든이 오피스 변경이 추진되던 ‘티마크 그랜드 호텔 명동’을 사들여 글로벌 호텔 IHG 계열의 ‘보코 서울 명동’으로 다시 개장했다. ‘더 프리마 호텔 종로’도 코로나 이후 오피스 개발을 원한 자산운용사에 인수됐으나, 전환 계획은 무산되고 현재 호텔로 성업 중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이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추진하던 호텔 개발 사업도 코로나 때 사업성이 악화돼 오랫동안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으나, DL이앤씨와 시공 계약을 맺는 등 본격적으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글로벌 부동산 업체 존스랑라살(JLL)은 “견고한 관광 수요, 제한적 공급, 우수한 실적과 해외 투자 증가에 힘입어 올해 호텔 시장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며 “이제는 많은 투자자가 오피스 빌딩, 리테일 등 비(非)숙박 시설의 호텔 전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방한 관광객 급증이 부른 호텔 수요
호텔 수요의 귀환은 관광객 급증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보면, 올해 2월까지 방한 관광객은 누적 226만명으로, 작년(191만명) 대비 18% 늘어났다. 같은 기간으로 비교하면 코로나 직전인 2019년 231만명의 98% 수준까지 회복했다.
코로나 때 크게 줄었던 객실 수는 회복이 더딘 상태다. JLL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 서울에서만 4~5성급 호텔 객실이 약 4000개 사라졌는데, 이후 2024년에 1100여 실이 공급됐고 올해 공급량도 1000실이 채 안 될 전망이다. JLL은 “향후 대형 신규 호텔 공급도 2027년 이후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2~3년간은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호텔 실적이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작년 평균 객실 요금은 코로나 대비 40% 이상 올랐다.
시장에 활기가 돌면서 해외 투자자들도 한국 호텔에 몰려들고 있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은 더 익스체인지 서울 등 오피스 빌딩은 매각하고 최근 글래드 호텔 등 3개를 한꺼번에 매입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본계 ARA자산운용과 영국계 M&G리얼에스테이트는 지난해 여의도 IFC의 콘래드 서울 호텔을 공동으로 인수했다. 상업용 부동산 기업 컬리어스 장현주 이사는 “한국 호텔 투자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판단을 한 해외 자본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펀드나 부동산 투자회사(리츠)의 호텔 매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