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NASA의 마젤란 탐사선이 찍은 금성의 마트 폰스 화산 레이더 영상./NASA

금성의 대기에서 발견된 인 화합물은 생명체가 아니라 화산이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앞서 금성의 구름에서 지구 미생물에서 나오는 인 화합물이 발견돼 생명체 존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실상은 화산 활동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의 조너선 루닌 교수 연구진은 1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금성의 화산이 지구처럼 활동하고 있다면 대기에서 발견된 인 화합물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인을 뿜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금성의 화산 활동으로 맨틀에서 엄청난 양의 인이 분출됐다면 대기층의 황산과 반응해 포스파인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산이 분출한 인이 대기의 황산과 반응”

지난해 9월 영국 카디프대의 제인 그리브스 교수 연구진은 하와이와 칠레의 전파망원경으로 금성의 50~60㎞ 상공 대기에서 미생물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수소화인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수소화인은 인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3개가 결합한 물질로 지구 실험실에서 합성하거나 늪처럼 산소가 희박한 곳에 사는 미생물이 만든다. 이후 금성 생명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금성은 대기층이 두꺼워 지구에서 표면의 화산 활동을 관측하기가 어렵다. 루닌 교수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화산 폭발이 만역 황산 구름으로 덮인 금성에서 일어났다면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금성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았다.

1990년대 마젤란 탐사선도 레이더 관측을 통해 금성의 화산 활동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앞서 1978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파이오니어 탐사선은 금성의 상층 대기에서 황산 양의 변동을 포착해 화산 폭발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코넬대 연구진은 “파이오니어의 관측 결과는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산에서 일어난 대형 화산 폭발이 유발한 변화와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코넬대 연구진은 하와이에 있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천문대의 금성 관측 데이터를 분석해 이 같이 주장했다.

일본 아카쓰키 탐사선이 촬영한 금성의 모습. 2010년부터 금성을 탐사하고 있다./JAXA

◇“금성 맨틀에 그만한 양의 인 없다”

하지만 작년 카디프대 연구에 참여한 미국 MIT의 야뉴스 페트코프스키 박사는 영국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금성의 심층 맨틀에서 작년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인을 분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코넬대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금성의 맨틀에 그만한 양의 인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카디프대의 그리브스 교수도 “인이 분출됐다 하더라도 금성 대기에서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며 “화산 활동으로 그렇게 많은 인이 분출됐다면 다른 가스도 급증했을텐데 대기에서 다른 화학 신호는 포착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루닌 교수도 화산 활동이 포스파인을 생성한다고 확신할 만큼 정보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화성의 독성 구름에 사는 생명체보다 화산이 포스파인을 설명하기에 더 괴상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금성탐사선 인비전 상상도. 레이더로 금성의 대기부터 내핵까지 분석해 지구(뒷줄 왼쪽)와 비슷한 금성이 왜 지금처럼 열악한 환경이 됐는지 알아낼 계획이다./ESA

◇미국과 유럽, 금성 탐사 잇따라 재개

과학자들은 금성의 생명체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직접 금성을 탐사해야 한다고 본다. 금성 탐사는 1961년 구소련이 베네라 1호를 보내면서 시작됐지만 오랜 역사에 비해 성과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이 잇따라 금성 탐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6월 나사는 금성 탐사선 ‘다빈치+’와 ‘베리타스’를 2028년 이후 발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1989년 마젤란호를 금성에 보낸 이후 32년 만이다. 유럽우주국(ESA)도 지난 10일 금성 탐사선 ‘인비전’을 이르면 2031년 발사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를 운영한 이후 7년 만에 금성 탐사를 재개하는 것이다. 인비전은 나사가 개발한 위성 영상 레이더를 장착하고 금성 궤도를 돌며 대기부터 내핵까지 분석할 예정이다.

금성은 크기나 밀도가 지구와 비슷하지만 내면은 지옥과 같다. 두꺼운 구름층이 누르는 힘 탓에 표면 압력이 지구의 90배나 된다. 이 구름층이 온실처럼 열을 가둬 기온도 섭씨 470도가 넘고 황산 산성비까지 내리는 ‘불지옥’과 같다. 과학자들은 탐사선으로 금성의 대기와 땅속까지 탐사해 금성이 한때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었지만 어떤 이유로 지금처럼 변했는지 추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