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박막 전극으로 제작한 다기능 웨어러블 디바이스. 피부에 부착해 습도, 인장 변형, 온도 등 다양한 자극을 동시에 모니터링 할 수 있다./서울대

와인 잔을 돌리면 안쪽에 마치 눈물처럼 방울이 흘러내린다. 국내 연구진이 이런 ‘와인의 눈물’ 원리를 이용해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전자기기에 쓸 수 있도록 얇고 잘 늘어나는 전극을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의 현택환 단장(서울대 석좌교수)과 김대형 부연구단장(서울대 교수) 연구진은 2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물 위에서 나노선을 정렬시키는 방식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300분의 1에 불과하면서 10배 이상 늘어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나노 박막 전극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니노 박막 전극 제조 과정. 마랑고니 효과에 의해 혼합 용액이 물 표면을 따라 움직이며 나노선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A, B). 용액을 빼곡이 넣은 뒤, 수조 중앙에 계면활성제를 넣으면 수조 가장자리 쪽으로 나노선들이 밀리며 더 조밀해진다(C-E). 에탄올 용매가 증발하면 나노선이 박혀 있는 얇은 고무막이 남으면서 나노 박막 전극이 만들어진다(F). /서울대

◇에탄올 퍼지면서 나노선 정렬

피부에 붙이고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웨어러블 전자기기는 전기를 잘 통하면서도 얇고 잘 늘어나야 한다. 연구진은 ‘수상 정렬 방법’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박막 전극을 만들었다.

먼저 수조 가운데에 은 나노선과 고무, 에탄올이 섞인 용액을 떨어뜨린다. 잉크 방울이 물에 떨어져 퍼지듯, 용매인 에탄올이 물에 퍼지면서 은 나노선을 끌고 가 가장자리에 쌓는다.

이는 19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마랑고니가 와인의 눈물을 설명한 이른바 ‘마랑고니 효과’ 덕분이다. 김대형 교수는 “농도 차이에 따라 에탄올이 이동하면서 주변 물질까지 끌고 가는 것”이라며 “비누 성분인 계면활성제를 넣으면 물의 표면장력이 줄면서 가장자리에 정렬된 은 나노선들이 더 밀착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에탄올이 증발하면 은 나노선이 박혀 있는 얇은 고무막이 남는다. 바로 나노 박막 전극이다. 제조에 걸리는 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연구진이 제작한 나노 박막 전극은 원래 길이의 10배까지 늘려도 전기전도성이 유지된다. 전기가 흐르는 나노선이 고무안에 안정적으로 박혀 있기 때문이다./서울대

◇금속처럼 전기 흐르고 10배까지 늘어나

연구진은 “물에서 합성한 나노 박막 전극은 금속과 비슷하게 전기를 잘 흘리고 고무 덕분에 10배까지 늘어나도 전기적 성질이 유지된다”고 밝혔다. 박막의 두께는 머리카락 300분의 1 수준인 25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여서 피부처럼 굴곡이 있는 표면에도 밀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나노 박막 전극으로 피부에 붙이는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어 근육에 흐르는 전류와 온도, 습도 등 다양한 생체신호를 동시에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김대형 부연구단장은 “고성능 신축성 나노 전극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택환 단장은 “이번 수상 정렬 방법은 금속 뿐 아니라 반도체, 자성체도 고무에 조합할 수 있어 다양한 고기능성 신축성 나노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