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명공학기업 암젠은 지난달 네덜란드 바이오 기업 시나픽스와 항체약물접합체(ADC·Antibody-Drug Conjugate) 치료제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암젠은 시나픽스의 기술을 활용해 연구하고, ADC 치료제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번 거래는 최대 20억 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다. 암젠은 지난해 말 한국의 레고켐바이오와도 최대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ADC 치료제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암세포를 표적으로 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마치 폭탄을 실은 유도미사일에 비유할 수 있다. 원하는 치료 부위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항암 치료에 의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는 ADC 개발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바이오 업체의 ADC 기술에 자신들의 항암 치료제 기술을 접목시켜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다. 시장조사기관 밴티지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42억4000만 달러 규모였던 ADC 시장은 2028년 131억7000만 달러로 연평균 19%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기업들도 시설 확보에 나서고 있다.
◇ADC 대규모 빅딜 잇따라
ADC는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첫 치료제 허가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개발 초기 효능과 안전성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기 시작하면서 개발과 기업 간 인수합병도 활발해지고, 신약 허가도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FDA로부터 승인받은 ADC는 12개다.
ADC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항암제 분야의 대세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경쟁적으로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독일 제약사 머크는 미국 바이오 기업 ‘머사나 세러퓨틱스’에 최대 8억3000만 달러를 주고 ADC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고, 미국 제약사 MSD도 중국 바이오기업 ‘켈룬바이오텍’과 90억 달러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길리어드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수조원을 투자해 ADC 기업들과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레고켐바이오가 ADC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지금까지 12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누적 계약 금액만 6조5000억원에 달한다. 셀트리온은 최근 미래에셋그룹과 함께 영국 ADC 개발사 ‘익수다 테라퓨틱스’에 투자해 지분을 47%로 늘렸다. 셀트리온은 또 국내 바이오테크 ‘피노바이오’의 ADC 기술을 사용해 항암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삼성바이오 등 국내 업체들도 가세
ADC 시장이 커지자 위탁생산 기업들도 시장에 가세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제품이 없다 보니 스위스 위탁생산업체 론자 같은 대형 기업이 주로 CMO를 맡고 있다. 하지만 ADC 개발사가 늘면서 임상을 위한 물질 제조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에 따르면 전 세계 임상시험 건수는 2012년 41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72건으로 증가했고, 현재 임상 3상이 진행되는 후보물질만 16개다. 바이오업계는 본격적으로 치료제가 개발·상용화되기 시작하면 CMO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조사기관 루츠 애널리시스는 “ADC 치료제 개발사의 약 70~80%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전문성과 경험을 보유한 CMO에 생산을 맡기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항체 의약품 중심에서 ADC를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계획이다. 현재 ADC 생산 설비를 준비 중이며, 내년 1분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CMO 사업에 뛰어든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인수한 미국 제약사 BMS의 시러큐스 공장에서 ADC 위탁 생산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 8개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춘 SK팜테코도 ADC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항체약물접합체(ADC)
영어로 Antibody-Drug Conjugate. 항체에 약물을 붙인 뒤 암세포에 정확히 도달시켜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 유방암·난소암·위암 같은 다양한 암을 목표로 한 ADC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