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탄생의 신비를 품고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생기는 부착 원반과 자기장의 영향으로 발생한 제트가 사상 처음 포착됐다. 베일에 싸여있던 블랙홀의 구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면서 별과 은하의 진화 과정 등 우주의 비밀을 풀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처녀자리의 타원은하 M87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부착 원반과 강력한 제트를 최초로 포착했다고 27일 밝혔다. 한국 측 연구 책임자인 박종호 천문연 선임연구원은 “수십 년간 예측만 무성했던 블랙홀 부착 원반을 사상 최초로 직접 영상화해 증명했다는 점에서 블랙홀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됐다.
블랙홀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기 때문에 주변 물질의 변화를 통해 블랙홀의 크기와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강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로 주변 물질이 빨려 들어가면서 원심력에 의해 열에너지가 발생하고, 이때 ‘부착 원반’이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빛나는 부분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이번 관측을 통해 블랙홀이 부착 원반을 흡수하는 모습과 강한 자기장의 영향으로 마치 기류처럼 블랙홀에서 뿜어 나오는 제트(jet)를 포착한 것이다.
이번 발견에는 전 세계 국제 전파망원경 연합(GMVA)과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ALMA), 그린란드 망원경(GLT)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019년 블랙홀을 처음으로 관측한 사건지평선망원경(EHT)으로는 블랙홀 주변의 광자 고리만 볼 수 있었지만, 이번 관측에서 배율이 향상되면서 블랙홀 주변 모습과 구조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김재영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는 “이전 EHT 관측이 블랙홀의 실존을 증명했다면, 이번 관측은 블랙홀 주변의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과정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