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 28일 주총에서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전 사장 형제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특히 이 형제가 지분 약 3%를 가진 사촌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촌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창업주의 아내인 송영숙 회장 모녀 측을 지지했으나, 송 회장 측이 OCI와 통합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창업주 별세 후 송 회장과 딸, 그리고 아들 형제로 나뉘어 벌인 경영권 분쟁이 격화된 결정적 계기는 상속세였다. 송 회장 모녀 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월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자, 임종윤·종훈 형제가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통합 작업을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갈등이 극대화했다. 2010년대 들어 연구·개발(R&D)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업계 선두권으로 올라섰던 한미그룹이 상속세에 발목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종윤 전 사장은 본지에 “한미그룹은 팔지도 않을 상속 주식에 부과된 세금 때문에 의미 없이 가업이 망가진 경우”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상속세·대출 얼마기에

2020년 8월 별세한 임성기 창업주의 한미사이언스(그룹 지주사) 주식은 이듬해 3월 2일 아내인 송 회장에게 698만9887주, 세 자녀에게는 각각 354만5066주 상속됐다. 당일 종가 기준으로 1조370억원 규모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 등 공익 법인에 지분을 일부 증여해 상속세를 줄였지만, 일가에게는 상속세가 총 5400억원 부과됐다. 송 회장이 약 2200억원, 세 자녀가 각각 약 10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오너 일가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주식 담보대출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했다. 송 회장은 2021년 은행과 증권사 등을 통해 약 1300억원 규모 주식 담보대출을 받았다.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은 1871억원, 차남인 임종훈 전 사장은 840억원, 딸인 임주현 부회장은 680억원가량 담보대출이 남아 있다. 송 회장을 비롯한 세 자녀는 3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해 왔지만, 아직 2700억원이 남아 있다.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사모 펀드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최종 불발됐다.

결국 모녀 측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영권을 안정시킬 방안으로 찾은 것이 OCI 그룹과 통합하는 것이었다. 우선 송 회장과 가현문화재단 등이 가진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현금 약 2775억원을 받고 OCI에 매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이 2528억원어치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현물 출자해 OCI 홀딩스의 신주를 사들여 최대 주주(지분 10.37%)가 된다. 추가로 OCI가 한미사이언스 신주 2400억원어치를 사들여 한미사이언스의 최대 주주(27.03%)가 되는 내용이었다. 송 회장 모녀는 이 거래를 통해 확보한 현금 2775억원을 상속세를 내는 데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주 발행을 통해 기업을 통합할 경우, 임종윤·종훈 형제를 포함해 기존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형제 측에선 한미사이언스의 경영권을 OCI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형제 측도 상속세 문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세계 최고 상속세율에 ‘휘청’

한미그룹은 한국의 징벌적 수준으로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온다. 현행 상속세법은 대기업의 최대 주주가 지분을 상속할 때 최대 60%의 상속세율을 적용하게 돼 있다.

한미약품은 상속세로 인한 경영권 갈등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R&D 투자 등을 통해 성과를 내는 기술 기업으로 통했다. 2015년에는 글로벌 제약 업체 사노피와 5조원 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에서 개발한 개량 신약 기술도 통한다는 인식을 심었다. 그해에만 일라이릴리, 얀센,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제약 업체와 6건의 이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창업주 사후 대주주들은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느라 신약 개발 등 회사 경영에 예전보다 소홀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