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대 규모의 광자 큐비트(qubit) 칩을 개발했다. 현재 컴퓨터는 전자가 있고 없음에 따라 0과 1로 나눈 비트로 정보를 처리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를 이용해 훨씬 빨리 계산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빛 입자인 광자로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간 성과로 평가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양자컴퓨팅연구실 연구진이 동시에 광자 8개를 제어할 수 있는 광자 큐비트 칩 개발에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양자컴퓨터는 미시세계에 나타나는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해 계산을 하는 장치다. 양자역학은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양자컴퓨터는 이 같은 중첩 현상으로 동시에 여러 연산을 처리해 슈퍼컴퓨터가 수백년 걸릴 암호 계산을 수초에 풀 수 있다.
ETRI 연구진은 실리콘포토닉스 양자칩을 기반으로 8큐비트 규모의 광자 큐비트를 구현했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탈리아 트렌토대와 협력해 4큐비트 규모의 광자 큐비트를 개발한 데 이어 성능을 한층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양자컴퓨터가 큐비트에서 양자 중첩을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다. 초전도, 이온트랩, 광자가 대표적이며 현재까지 상용화된 양자컴퓨터는 대부분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방식을 쓰고 있다. 초전도 재료로 제작된 회로는 작은 전하를 가둘 수 있으며 이 전하가 큐비트 역할을 한다. 다만 초전도 방식은 저온을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광자 방식은 광자의 파동과 진동 방향을 이용해 큐비트를 구현한다. 초전도와 달리 광자는 상온에서 작동할 수 있어 소형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온트랩은 전자기장에 갇힌 이온의 중첩 상태를 이용한다. 중첩된 이온을 가뒀다고 해서 ‘이온 덫’이란 뜻인 이온트랩이라고 한다.
이번 큐비트 칩은 비선형 광자 쌍생성 장치 8개와 광자의 진행 경로를 조절하는 광자 스위치 40여개로 구성됐다. 연구진은 큐비트 칩으로 세계 최초로 6큐비트 규모에서 양자 얽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얽힘은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상태 정보를 공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두 개의 광자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진입했을 때 함께 뭉쳐서 진행하는 ‘홍-오-만델(HOM) 효과’를 측정하는 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현재 8큐비트 규모의 광자에서 발생하는 양자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16큐비트 규모의 광자 큐비트 칩도 개발할 예정이다. 나중에는 32큐비트까지 확장해 양자 기계학습을 비롯한 응용 연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윤천주 ETRI 양자기술연구본부장은 “기술적 완성도 높여 5년 내 클라우드(가상 서버) 서비스를 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며 “새로운 영역 학문 개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종무 ETRI 양자컴퓨팅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양자컴퓨터를 구현하 위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앞다퉈 진행 중”이라며 “연산 오류를 극복하는 양자컴퓨팅 구현과 상용화를 위해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