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휩싸여 무너져 내린 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이 5년 만에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4월 15일 불이 나면서 지붕과 석조물 90%가 피해를 입었다. 화재 이후 복원 전문가는 물론 과학자들까지 동원돼 과학적인 복원 작업을 도왔다.
7일(현지 시각) 열린 재개관식에는 1500명의 세계 지도자와 고위 인사가 참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브리짓 마크롱, 윌리엄 영국 왕세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창업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 책임자인 리비오 드 루카 박사는 성당 개방 하루 전인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과정에서 대성당 복원 결과를 넘어서는 훨씬 광범위한 성과를 올렸다”며 “다른 복잡한 보존 문제에 직면한 역사 유산에 적용할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복원용 목재 후보 찾다 중세 기후 연구 성과
성당은 전기 합선으로 발생한 불로 납으로 덮인 지붕과 웅장한 첨탑이 대부분 무너졌다. 화재 당시 파리 소방관들은 재난에 대비해 개발된 대응 절차에 따라 어떤 예술 작품을 어떤 순서로 구출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수압을 낮게 유지하고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 물을 뿌리지 않아 차가운 물이 뜨거운 유리를 깨뜨리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지붕과 첨탑에서 독성 납이 쏟아져 내렸고 성당의 플라잉 버트레스(건물 외벽을 떠받치는 반아치형 벽돌과 구조물)의 균형을 위협하면서 건물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정부와 과학계는 화재 이후 175명이 넘는 과학자를 성당 복원에 투입했다. CNRS 소속 화학자인 마르텡 레제르 박사는 “성당 화재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지만 건물 일부의 물질적 손실이 더 큰 손실로 악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며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과학적인 대응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CNRS와 프랑스 문화부 전문가들은 화마를 피한 건물 잔해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기한 내에 복원을 마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드림팀을 결성했다.
문화부 산하 역사기념물연구소(LRMH) 티에리 짐머 부소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성당 지붕과 지지대(트러스) 잔해 속에서 발견된 참나무 골조 조각 1만 개를 분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성당 지붕을 복원하려면 참나무 1500그루 이상이 필요한 실정이다. 연구팀은 가장 비슷한 참나무를 찾기 위해 잔해 조각의 스트론튬-88과 스트론튬-86의 비율과 토양에서 흡수된 칼슘과 마그네슘의 함량을 분석했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알렉사 뒤프레 박사 연구진은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163년 성당 건설 때 목재를 공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당 주변 수백㎞ 이내 지역에서 분석 결과와 유사한 성분을 가진 지역을 집중 조사했다.
과학자들은 불에 탄 목재 잔해를 분석하면서 의외의 성과도 얻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건설되던 950년에서 1250년까지 유럽 중세 온난기의 기후 조건을 알아냈다. 이 시기 서유럽과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는 예외적으로 따뜻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알프스 지역의 나무 성장 패턴은 중세 온난기 기온 기록을 제공하지만 프랑스 북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지대인 파리 분지의 증거는 충분하지 않았다.
파리사클레대 발레리 도우 교수 연구진은 목재 샘플의 셀룰로오스를 이용해 온도와 습도 변동의 대리 지표인 탄소-13과 산소-18 동위원소 성분의 변화를 분석했다. 과학자들은 화재로 불탄 들보 내부 부분만 분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성당과 비슷한 시기 지어진 파리 인근 수도원 두 곳의 정보와 결합해 분석한 결과 서기 980년에서 1180년까지 기후 조건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전에 알프스의 나무 연구에서 추정했던 것만큼 중세 시기 파리 지역이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자들은 이제 이 불일치의 원인을 찾고 있다.
◇납 오염 우려 없어, 중세 아치 과학적 원리 밝혀
불이 나면서 성당 안팎에는 뜨거운 열에 녹아 내린 납을 많이 함유한 황색 퇴적물이 쌓였다. 약 285t의 독성 납 피복재가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녹았다. 복원팀은 유해한 납 성분으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어야 했다. 도심에서 납 성분이 대량 발생하면서 건강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LRMH 소속 화학자인 오렐리아 아제마 연구원과 동료들은 대형 화재의 잠재적 영향에 초점을 뒀다. 연구진은 지난 10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오브 토털 인바이런먼트’에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파리 일대에 노란색 에어로졸이 최대 1t의 납을 뿌렸다고 보고했다. 파리와 근교 지역을 관할하는 일드프랑스 보건국은 2021년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발생한 납 오염 추정 지역에서 청소년 1222명의 혈액을 검사한 결과 납 수치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복원팀은 화재 현장에서 지금까지 팔레트 1000개 분량의 돌과 금속을 회수했다. 하지만 뜨거운 열과 연기에 노출되면서 회수된 돌과 금속을 재활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컴퓨터 과학자이자 건축가인 드 루카 박사는 “잔해가 성당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복원 과정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로랑대 세드릭 물리 교수는 성당 위의 무너진 아치형 천장에서 회수한 수십 개의 쐐기 모양 돌인 부수아르(아치를 구성하는 석재)를 꼼꼼히 재조립하며 기계적 특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했다. 보르도대 스테판 모렐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성당에 새로 설치된 아치가 화재 전 아치와 유사한 성질을 갖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가상 세계에 성당 구축, 내년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공개
복원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연구자들도 내년부터 노트르담 대성당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정부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각종 정보를 활용해 가상 세계에 똑같은 모습의 ‘디지털 트윈’ 성당을 구축했다. 연구진은 불이 나기 전 성당 모습을 담은 100만 장과 성당 칸막이 조각부터 이미 철거된 뒤 성당 바닥에 묻혔던 것으로 보이는 각종 잔해를 입체(3D)로 촬영한 사진 5000장 이상을 이용해 가상 세계에 이 쌍둥이 성당을 구축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장치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할지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가상 복제본이다. 작은 기계 장치부터 거대한 선박, 공장이나 도시를 가상 세계에 똑같이 구현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은 최근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 전 복잡한 실험을 먼저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
CNRS는 성당 복원에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성당의 디지털 트윈을 구축했다. 복원 과정에서 건축, 고고학, 재료 과학 분야에서 수집하고 구축한 풍부한 데이터가 함께 제공될 전망이다.
850년 만에 화마에 파괴된 성당의 디지털 트윈 구축에는 벨기에 미술사학자인 앤드루 탤런 박사의 공이 컸다. 탤런 박사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나기 전인 2015년부터 빛을 벽에 쏴서 되돌아오는 신호로 입체 공간 형태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성당 안팎의 못습을 담았다. 탤런 박사는 성당에 불이 나기 1년 전 뇌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업을 주도한 CNRS 드 루카 박사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디지털 트윈이 2025년에 국제 연구 커뮤니티에 공개돼 다양한 학문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유산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0), DOI: http://doi.org/10.1126/science.abb6744
Science(2024), DOI: http://doi.org/10.1126/science.zz8tg0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