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소자를 이용한 양자 통신 모식도./Christoph Hohmann, Nanosystems Initiative Munich
미국 하버드대와 아마존웹서비스(AWS) 공동 연구진은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잇는 약 35㎞ 길이의 광섬유를 통해 양자 정보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전송을 위한 양자컴퓨터./하버드대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삼체'에는 지구로부터 4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외계 생명체와 인간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4광년은 빛조차 4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먼 거리다. 아무리 SF라고 해도 마치 지구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듯 신호 지연도 없이 먼 우주의 존재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걸까. 그 비결은 바로 '양자 통신'이다.

양자 통신은 양자의 독특한 물리적 성질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첨단 기술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나누면 양자암호를 사용해 정보의 보안성을 강화하는 ‘양자암호통신’, 두 지점 사이에서 양자 정보를 주고 받는 ‘양자 전송’, 여러 지점 사이를 그물망처럼 이어 정보를 주고 받는 ‘양자 네트워크’가 있다.

배달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양자 통신은 물건(양자 정보)을 전달하는 전체적인 기술이고, 양자암호통신은 물건이 안전하게 전달되도록 보호하는 방법이다. 양자 전송과 네트워크는 물건을 주고받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이다.

한때는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양자 통신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양자암호통신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고, 실험실 밖에서 양자 전송과 네트워크 기술이 시연되고 있다. 더 이상 소설과 드라마 속 먼 외계인의 기술이 아니다.

◇중국이 이끄는 양자암호통신...한국도 발맞춘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 통신 기술 중 가장 상용화가 빠른 분야다. 이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비밀 키를 안전하게 공유하는 양자 키 분배(QKD)에 있다. 도청을 시도하면 양자 상태가 변해 즉시 탐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안성이 뛰어나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은 2021년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2000㎞ 유선망을 구축해 유선 양자암호통신을 구현했다. 또 2016년 발사한 세계 최초의 양자 통신 위성 ‘묵자’를 이용해 2600㎞에 달하는 무선 양자암호통신에도 성공했다. 총 4600㎞에 달하는 유·무선 통신망을 구축한 셈이다.

미국과 유럽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유선광통신망을 활용한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개발해 왔다. 2018년 미국의 기업 퀀텀 엑스체인지(Quantum Xchange)는 워싱턴과 뉴저지, 뉴욕, 보스턴을 잇는 800㎞ 구간에서 양자암호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양자 플래그십 프로그램으로 2018년부터 10년간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해 유럽 주요 지역에 양자 암호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도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올해 초 100㎞ 수준의 장거리 유선 양자암호통신 시연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 KT 같은 이동통신사와 정부출연연구기관들도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양자 전송과 네트워크, 아직 기초 단계에 머물러

양자 전송과 네트워크는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다. 양자 얽힘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 중 한 개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결정되는 동기화 현상을 말한다. 쌍을 이루는 양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양자 얽힘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다. ‘삼체’에서 지구와 삼체인 간의 소통 역할을 맡은 ‘지자’도 이 양자 얽힘을 이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 분야에서는 미국이 ‘최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하버드대와 아마존웹서비스(AWS) 공동 연구진은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잇는 약 35㎞ 길이의 광섬유를 통해 양자 정보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 지역에서 양자 얽힘을 이용해 정보 전송을 시연한 건 처음으로, 대규모 양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핵심 기술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영익 KAIST 교수는 “(미국의 연구 성과는) 서울과 대전 두 지점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서울과 대전, 대구, 부산, 인천 등 여러 지점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것이 양자 네트워크인데, 이를 위해서는 양자 신호를 증폭하거나 연결하는 ‘양자 중계기’를 포함한 기술이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자 통신의 목표 ‘양자 인터넷’… 한국이 주도하려면

궁극적으로 양자 통신의 목표는 ‘양자 인터넷’이다. 이는 양자암호통신, 양자 네트워크, 양자컴퓨터 기술 등이 결합된 초고속·초안전 통신망으로, 기존 인터넷의 한계를 뛰어넘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양자 통신은 아직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장거리 통신에서 신호가 손실되기 쉽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양자 중계기와 양자 메모리를 개발해야 하고, 초기 비용 절감, 기존 네트워크와의 호환성 확보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시점에서 투자를 가속한다면 한국도 양자 인터넷 선두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손영익 교수는 “양자암호통신의 경우 한국이 선두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양자 네트워크를 위한 양자 중계기 기술은 세계 1위 그룹과 10년 이상 차이 난다”며 “양자 중계기와 같은 기초 기술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정부 중심의 투자와 함께 양자 통신을 연구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역시 많아져야 한다”며 “미국에서는 양자 분야를 구글이나 IBM, 아이온큐(IonQ)와 같은 기업이 주도하는 것처럼 한국도 적극적으로 민간 기업의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