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시러큐스 공장에 항체-약물접합체(ADC)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위한 플랫폼을 적용하고, 본격적인 수주 활동에 돌입했다. 신임 대표 영입에 이어 롯데그룹 3세까지 지원사격에 나선 만큼, 올해 안에 반드시 첫 CDMO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제임스 박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는 16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웨스틴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에서 열린 제43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 아시아태평양(APAC) 트랙 발표에서 “ADC CDMO에 본격 진출을 위해 국내 ADC 바이오벤처인 카나프테라퓨틱스와 ADC 플랫폼 ‘솔루플렉스 링크(SoluFlex Link)’를 공동 개발했으며, 미국 파트너사 한 곳과도 관련 MOU(업무협약)를 맺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2022년 6월 설립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 시러큐스 소재 BMS 공장(3만5000L)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인천 송도에 1공장(36L) 건설을 시작했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CDMO 사업 진출 3년차이지만, 매출은 아직 시러큐스 공장에서만 나오고 있다. BMS가 이곳에서 생산하던 2800억원 규모의 위탁 생산(CMO)을 3년간 유지하는 계약에 따른 것이다.
다만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이 2004억원에 그친 것을 보면 이조차도 마무리 수순인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도 신규 생산시설 건설로 인해 당분간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롯데는 최근 제임스 박 대표이사를 영입하며 사업 정비에 나섰다. 박 대표는 지난해 11월 지씨셀의 대표직을 사임한 뒤 지난 10일 이사회를 거쳐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신임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됐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콜롬비아대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머크(MSD), 영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을 거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영업센터장(부사장)을 지냈다.
대표이사 교체 배경에는 이원직 전 대표의 성과 부진이 꼽힌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롯데지주에 영입된 뒤 CDMO 사업의 기반을 닦는 역할을 맡았다. BMS 공장 인수와 송도 1공장 건설 등을 추진했지만, 해외 영업 역량이 부족했던 탓에 수주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CDMO 전문가를 새롭게 영입한 만큼 박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역시 수주다. 박 대표도 “올해 안에 수주를 따내는 게 저의 미션”이라며 “뉴욕 시러큐스 공장과 현재 건설 중인 송도 1공장을 필두로 글로벌 고객사들에 고품질의 생산 시스템을 어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시러큐스 공장 중심의 ADC 위탁생산을 주력 사업으로 정했다. 암세포를 잡는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ADC는 차세대 항암제 핵심 기술로, 항체에 약물을 붙여 정확히 암세포에만 전달해 기존 항암제보다 치료 효과가 높고 정상세포의 손상을 막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ADC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올해 첫 생산에 나선다.
국내외 기업 2곳과 MOU도 맺었다. 카나프테라퓨틱스와는 지난해 7월 공동개발 계약을 통해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링커’와 ‘페이로드(약물)’ ADC 플랫폼인 솔루플렉스 링크를 개발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시러큐스 공장에 솔루플렉스 링크를 적용해, 오는 3월 의약품 제조에 필수인 GMP(우수 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 인증을 위한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시러큐스 공장에서 완제의약품생산한 항체와 ADC 원료의약품을 미국 서부·동부에 있는 완제의약품 CDMO 파트너사에 전달해, 공정개발부터 생산 전 단계를 담당하는 구도로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북미 내 ADC 엔드투엔드(end-to-end)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 공장은 지난 2022년 인수할 당시 준공이 20년이 넘어 업계에서 시설의 노후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박 대표는 “시러큐스 공장은 지난해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실사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기 감사에서도 제로(0) 수준의 무결점 품질 평가를 받았다”며 “새로 지은 건물도 매년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만큼, 노후화 문제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박 대표는 이번 JPM 일정을 마치고 뉴욕 시러큐스 공장을 방문해 운영 상황을 직접 점검할 계획이다.
이번 JPM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도 처음 참석했다. 신 부사장은 2023년부터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계열사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임하고 있다. 신 부사장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공식 행사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 부사장과 박 대표는 JPM 첫날인 13일(현지 시각) 개막식에 이어 로슈, 존슨앤존슨(J&J), BMS 등 메인 발표를 듣고, 하루종일 행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라톤 미팅을 가졌다. 신 부사장은 14일까지 일정을 소화한 뒤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신 부사장님의 참석이 아주 큰 힘이 됐다”며 “고객사 미팅에서도 여러 제안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