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 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뱀독을 중화하는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이 연구팀은 코브라의 독을 중화하는 단백질을 설계하고 효과를 확인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지난 15일 발표했다.
독사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 노인과 어린이 등 취약 계층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해마다 180만~270만명이 독사에게 물리고, 이 가운데 약 1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마비와 호흡 장애, 출혈 장애 등의 증상이 발생하고, 사망하지 않더라도 영구적인 장애를 입을 확률이 높다.
현재는 소량의 뱀독을 동물 실험체에 주입해 만들어지는 항체를 바탕으로 항독제를 생산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대량생산이 어렵고, 일부 독소에 대해서는 면역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뱀 독소 중 특정 계열(3FTx)을 목표로 하는 단백질 개발에 나섰다. 3FTx는 다수의 뱀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세 손가락 독소(3 Finger Toxin)’라는 이름처럼 아미노산 사슬 세 가닥이 손가락처럼 뻗어 나오는 형태의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만들어내는 AI 기반 생성 모델 ‘RF디퓨전(RF diffusion)’을 활용해 3FTx 단백질에 정확히 결합해 독성을 중화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했다.
연구팀은 독을 주입한 쥐에게 AI로 설계한 단백질을 투입했다. 분석 결과, 생존율이 80~100%로 높아진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중화 단백질 설계도를 만들어 대량 제조도 가능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AI를 활용함으로써) 실험실에서 여러 차례 실험할 필요 없이 항독소를 찾을 수 있었다”며 “(AI 활용은) 뱀의 맹독을 치료하는 것 외에도 약물 발견 과정을 간소화해 신약 개발 비용을 낮추고, 모든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는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AI를 활용해 발굴한 신약 물질이 임상 시험을 거치고 있다. 미국의 리커전 파마슈티컬스, 인실리코 메디신 등이 AI로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이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1~2년 내에 AI로 개발한 신약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