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페이스X가 발사한 1단 로켓이 발사대로 다시 돌아와 젓가락처럼 생긴 로봇팔의 품에 안겼을 때, 세계가 놀라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 발사체 기술 개발의 판도를 확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원히 뒤처지지 않으려면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약 4개월 후인 지난달에 열린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뜻밖의 안건이 발표됐다. 누리호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발사체의 사업 계획을 바꿔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으로 개발을 추진한다는 검토안이었다. 1회 발사를 임무로 삼았던 차세대 발사체를 재사용으로 바꾼다는 안건이 우주 항공 업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업 완료 기한은 기존대로 2032년이라는 점에 일각에서는 무리한 일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최근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본지 첫 인터뷰에서 “2030년대가 되면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재사용 발사체를 보유할 텐데 우리가 지금이라도 재사용화를 목표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도전해야 ‘세 번째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 분야, 민간이 주도해야”
지난해 5월 우주항공청의 초대 청장으로 취임한 윤영빈 청장이 취임 직후 제시한 비전이 “우주 항공 분야를 키워 ‘세 번째 기적’을 창조하자”였다. 첫 번째 기적은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강의 기적’, 두 번째는 ‘반도체의 기적’이고, 세 번째 기적이 우주 항공 분야에서 실현할 기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를 꼽는다. 이를 통해 차세대 발사체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계획이다. 윤 청장은 “2030년대에는 우리도 재사용 발사체와 궤도 수송선, 태양권 우주 관측소를 보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극 마크가 달린 재사용 발사체가 달 착륙선을 싣고 우주로 나아가고, 민간 위성을 탑재한 궤도 수송선이 매일 지구 저궤도(200~2000㎞ 고도)를 오가는 장면을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민간 우주 기업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윤 청장은 지난달 개최한 국가우주위원회에서 ‘저궤도 위성 개발’ ‘궤도 수송선 개발’ 등 주요 사업에 민간 기업이 적극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본지에 “궤도 수송선은 작은 위성 여러 기를 저궤도 정거장까지 올려 보내는 셔틀버스 역할을 하는 우주 수송 기술인데, 이런 기술을 개발 중인 국내 벤처 기업이 이미 있다”며 “궤도 수송선이 더 발전하면 우주에서 위성에 연료를 재주입하거나 수리할 수도 있고, 폐기할 위성을 잡아서 처리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우주 항공 산업은 현재 800조원 규모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약 1%로 추정된다. 윤 청장은 “(우주 항공 산업이) 20년 후에는 42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점유율을 10%로 높이는 것이 목표”라며 “우주항공청은 예산 상당 부분을 우주 스타트업의 마중물로 사용해 민간 우주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 개발할 것”
국가우주위원회의 차세대 발사체 재사용화 검토 계획안에 대해 윤 청장은 “변화를 빨리 직시하고 좀 더 도전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며 “상업용 발사체 시장의 80%를 스페이스X가 차지하는 것은 재사용 발사체 덕분”이라고 했다.
윤 청장은 스페이스X 등장 이전부터 우주 발사체의 재사용 필요성을 역설해 온 로켓 전문가다. 일각에서는 차세대 발사체를 재사용으로 개발하면, 누리호에 적용했던 케로신(등유) 엔진 대신 메탄 엔진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대해 윤 청장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메탄 엔진 기술을 발전시키면 스페이스X의 랩터 엔진과 같은 차세대 엔진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하면 1회 발사 비용을 현재 ㎏당 8000달러 수준에서 2000달러까지 낮출 수 있어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등 다른 민간 기업도 참여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이번 계획안은 종전 계획 변경에 앞서 여러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
2024년 5월 27일 우주항공청 초대 청장으로 취임했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학·석사, 미국 미시간대 항공우주공학 박사 출신으로 1996년부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액체로켓과 가스터빈 엔진 등 우주 발사 추진 기관 분야에서 40여 년간 연구를 수행했다.